이런 것까지 어려워한다고?
싫은 게 아니라 불편한 걸 수도 있어요
대놓고 나 예민해요 하는 아이들도 있고, 티는 안 나지만 알고 보면 예민한 아이들도 있다. 그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를 간략하게 생각나는 대로 써보려고 한다.
1. 대형버스
첫째는 21개월에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무진장 좋아했고, 버스정류장에서 자동차 구경만 시켜줘도 한 시간을 가만히 보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12월에 근처 지역 키즈카페로 대형버스를 타고 소풍을 가게 되었다. 아이는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원장 선생님에게 안겨서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기사님이 검은색 옷을 입은 아저씨라 그런 것 같다고 원장 선생님은 그러셨지만, 후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어린이집 노란 버스가 아니어서 무서웠다고 했다.
2. 인사
어린이집 등, 하원 인사는 잘했다. 선생님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어린이집 밖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입을 꾹 닫았다. 그러고는 다음날 또 어린이집에서 그 선생님과 껴안으며 인사한다.
유치원 엄마 참여수업이 끝나고, 현관에서 같은 반 여자아이와 엄마가 인사를 건넨다. 아이가 만복이를 좋아한다는데, 만복이는 눈길도 안 주고 땅만 본다. 그 친구가 잘 가라고 웃으며 인사하는데도 안 받아주고 가만히 있는다.
이런 상황은 정말 어리둥절했었다.
3. 한복 입기
반바지 거부하는 애들도 있고, 새 운동화 거부하는 아이들도 봤다. 만복이는 한복 거부였는데 명절 어린이집 사진에 혼자 울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곱게 입은 한복에 활짝 웃고 있었다.
4. 토끼탈 쓰기
탈 쓰고 동물 흉내 내는 활동이었는데, 이건 첫째, 둘째 모두 거부했다. 이것도 활동사진에 다른 아이들은 전부 토끼탈 쓰고 있었는데, 우리 집 아이들만 안 쓰고 있었다.
5. 야외수영장
첫날은 2시간 만에 발만 담그고 귀가, 두 번째 방문부터 아빠한테 안겨서 무릎까지. 세 번째 방문부터 튜브 타고 허리까지.
6. 키즈카페 기차
처음 방문하는 곳은 무조건 거부였다. 기차 타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두 번째 방문부터 불안한 눈빛으로 타기 시작했다. 이것도 두 아이 모두 해당.
7. 썰매
실내 썰매였는데 강력히 거부했으나, 그때 더 어린아이들도 타고 있었고, 이걸 성공하면 눈썰매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한 번만 타보고 무서우면 다시 안타도 된다고, 애기들 보면서 설득 성공했으나, 타고 내려오자마자 대성통곡하면서 안겼다. 아직 눈썰매는 도전해보지 못했다.
8. 친구 엄마 차 타기
알고 지낸 지 2년 정도 된 친구 엄마 차만 탄다. 누구인지 알아도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엄마들 차만 탄다.
9. 이게 제일 기억 남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네 집에 두 번 놀러 갔었다. 얼마 안 돼서, 친구네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갔고, 이사 간 집에 놀러 갔을 때, 현관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50분을 서있었다. 새로운 집이라 들어오기를 꺼렸다. 그때 친구 엄마가 난처했는데, 나는 아이에게 계속 말 걸면 역효과라고, 그냥 두면 진정하고 친구가 노는 게 궁금해서 들어올 거라고 기다리자고 했다. 그리고 50분쯤 됐을 때 현관 앞에 자리 잡고 앉게 됐고, 그제야 신발을 벗고 들어와 신나게 놀았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고 하나 둘 생각해보면 낯을 가린다는 게 사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차도, 집도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별일 아닌 것들이 내 아이에겐 별일이 되었다. 쉬운 게 없어서 참기도 많이 참고, 기다리기도 정말 많이 기다렸다.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새로운 이동수단을 이용하게 되면 일주일 전부터 계속 미리 얘기해줬다. 지금도 아이가 불편해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시도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긴 하다. 그래도 확실한 건 어릴 적에 비하면 당황하게 하는 일이 많이 적어졌다. (7살 이후) 주변인에게 아이가 왜 이러는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지칠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내 아이가 예의 없고 버릇없는 아이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열심히 설명해야 한다. 남자아이가 예민하면 더 사람들의 눈길이 가는 것 같다. 아직 어린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이 글을 본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상황보다, 지나가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나마 덜 당황하니까...
(아... 정말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