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먹고 싶어!

잘 사는 게 별거냐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으면 된 거지

by 에토프

나에겐 8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다.

내가 9살 되던 해에 엄마는 둘째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막둥이를 낳고 다시 집에 왔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붉은 피부의 아주 작은 아기가 침대 위에 놓여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뽀얗고 새하얀 아기가 아니라서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시키면 다하는 착한아이였고, 둘째 여동생은 해가 지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아 엄마가 잡으러 가야 하는 아이였다. 덕분에 내가 막둥이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이며, 자주 돌봤다.

막둥이가 태어나고 4년 뒤에 집이 휘청했는데, 뒤에 엄마가 보험영업에 나서면서 엄마의 퇴근시간 전까지는 내가 두 동생을 돌보며 집에 있어야 했다.

나는 12살까지는 어느 정도 누릴것들을 누리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것 같은데, 막둥이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막둥이가 6살쯤 되었을 때다.

어느 날은 막둥이가 과자가 먹고 싶다고 우는데, 엄마는 5백 원짜리 하나도 용돈으로 주지 않아서 나에겐 돈이 없었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 이후라 밀가루값이 올라 과자값도 엄청 뛰었다.

그깟 과자 한 봉지 못 사주는 내가 너무 싫어서 눈물부터 났다. 나한테, 아빠한테, 엄마한테 화가 나는데 막둥이에게 화를 냈다.


"네가 이러면 엄마가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


사실, 막둥이는 이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어린아이는 과자가 먹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들 먹는 그깟 과자 하나 가지고, 엄마가 속상한 것까지 들먹여야 했을까. 6살 아이가 부모님 주머니 사정을 알 필요는 없었을 텐데.

떼를 쓰는 막둥이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도 아이는 떼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막둥이는 나와 힘겨루기를 하고 내 배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팠다. 못 사주는 것도 서러운데, 제대로 맞으니 또 아팠다.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그날 엄마에게 그 사건을 말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형편이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지고 나서부터, 막둥이 옷장에 과자박스가 쌓여있었던걸 보면 내가 말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그 시절 막둥이 나이가 되었을 때, 계속 그때의 생각이 떠올라서 자주 울컥했다. 마트에서 먹고 싶은 과자와 초콜릿을 맘껏 고르는 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막둥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이깟게 얼마나 한다고...'


맥주 한잔에 과자를 먹을 때도, 어쩜 그땐 숨겨놓은 5백 원이 없었을까 씁쓸하다.



내 아픈 손가락 막둥이가 서른 살이 되었다.

9월에 작가 공모전을 한다기에 또 그냥 내 마음대로 끄적이다가 문득, 막둥이의 아르바이트 경험담이 필요해서 오랜만에 톡을 했다.

다짜고짜 10년도 더 된 일을 물었으니, 뭔 일인가 싶었을 거다.


"누나 글 써"


조회수 캡처 화면을 보내줬다.

브런치 작가 아무나 되는 거 아니라며, 대단하다고 칭찬도 받았다. 막둥이는 본인이 오빠인 것 마냥 군다. 지금은 데이터 분석 관련 직장에 근무하는터라 뭐든 분석하는 병에 걸렸다.(어릴 적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도 아무런 감탄사가 없었다. 오로지 분석뿐...) 아무래도 또 내 글을 분석할 것 같았다.


"평가하지 마. 창피해"


얼마 전 사이트에 오른 글을 보냈다.

나는 그저 내 느낌대로, 손이 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써내려 갔는데, 동생이 보내온 분석 결과는 대단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평소 하던 생각을 썼을 뿐인데, 저렇게 분석을 해주다니 놀라웠다.


'많이 컸구나. 짜식.'


건장한 청년이 되었는데도 내가 떠올리는 막둥이는 6살 과자를 사달라고 조르던 그 아이인가 보다.

나는 여전히 짠하다.

막둥이가 자기도 이제 돈 번다고, 조카들 데리고 마트에 가서 양손 가득 사준 과자도 슬펐고, 막둥이 방에 쌓여있던 과자도 슬펐고, 그날 막둥이 마음을 몰라준 내가 생각나서 미치도록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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