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사람이 셋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막내 땅콩이는 더 커봐야 알겠지만 약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끝장 보는 성격은 내가 심은 콩이다. 처음을 두려워하는 남편이 심어놓은 팥에 내가 심어 놓은 콩이 없었더라면, 육아가 더 버겁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제덕 쿵야가 파이팅을 외치고,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텐을 쏘는 올림픽 양궁을 보고 나서, 다이소에 가 양궁 장난감을 사 왔다. 두 아이는 2박 3일 내내 활을 쏘느라 바빴다.
11년된 포스터입니다. 남편은 왜 이걸 버리지 않았던걸까요.
과일 포스터가 과녁이 되었다. 화살이 잘 붙는 재질이라 더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점수는 어떻게 매길 건데?"
크기순으로 점수를 매기는 건가 싶었는데 점수를 기억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이들에게 물었다
"과일 이름. 글자 개수가 점수야."
우리 집 아이들은 놀이에 특화되어있다. 규칙도 잘 만들어내고, 신박한 방법으로 단순한 놀이도 지겹지 않게 바꿔낸다. 또 한 번 아이들에게 놀랐다.
다음날, 첫째 아이가 손가락이 아프다며 나에게 왔다.
"여기가 왜 아프지? 어제 뭐 했... 양궁..."
화살을 잡는 손가락이 빨갛게 변해 물집이 잡히려고 했다.
"이럴 거면 양궁협회에 전화를 해 보자. 응?"
놀자고 하는 활쏘기인데, 아이들은 또 열심히 신나게 쏘아대는 바람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감았다.
어린이집에서 물총놀이가 있던 여름날에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총을 쏘는 손가락이 아팠다.
적당히 하라고 말리고 싶지만, 내가 심은 콩이라 안 되는 걸 알기에 그저 지켜본다.
어제는 딸아이가 밤 8시가 되어 스톱모션을 시작했다.
셀프어쿠스틱 도안으로 만든 스톱모션입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시작하면 다 완성해야 잠자리에 들 아이라서 멀리서 지켜봤다.한 시간에 125장을 찍었다. 30초에 1장 꼴이다. 125장을 찍는 동안 아이는 엉덩이 한번 떼지 않고, 책과 핸드폰 화면, 도안을 번갈아 보며 집중했다. 많은 엄마들이 말한다. 아이들이 잘 때 가장 예쁘다고.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일에 빠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초등학교 시절 매년 과학상상 그리기 대회가 열렸다. 미술 선생님이 6학년이던 나와 내 친구를 불러 일주일간 그려온 그림을 보고 대회에 내보낸다 하셨다. 나는 매일매일 다른 스케치로 그림을 그려서 가져갔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 12시를 넘겨 하품을 하고 눈문을 흘려가며 열심히 그렸다. 주무시고 계시던 부모님이 나와서 말릴 정도였다. 친구는 매일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가져오거나, 똑같은 스케치의 그림을 가지고 왔다.
미술 선생님은 내 친구를 대회에 내보내셨다. 당시에는 그저 소심한 성격의 아이라서 화도 내지 못했다. 열심히 잠도 줄여가며 그려간 내 그림이 완성도 되지 않은 그림보다 못하다는 게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친구는 전국 과학상상 그리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선생님의 안목이 맞았던 거다.
살면서 가끔은 노력보다 능력이, 과정보다 결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노력과 과정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휴지조각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열세 살에 내가 한 노력이, 내가 겪은 과정이 나의 성취감이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이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구나 느껴봤으니까.
자존감이 낮은 내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성취감을 맛 본 경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다른 무언가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긍정을 불어넣어 주는 힘을 아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기회는 분명 줄었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무언가를 해낼 때 나도 덩달아 기쁠 수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