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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Sep 10. 2021

엄마도 병원이 무섭다

나에게는 독감보다 무서운 열감기

늦둥이가 오랜만에 아팠다.

두 애들에 비해 외부 접촉이 적은 터라 그래도 병원 방문이 거의 없는 아이였는데, 화요일부터 3일 내내 밤에는 39.5도를  넘나들어 해열제를 들이부었다. 열만 나고 다른 증상이 없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 콧물이든 설사든 뭔가 더 진단에 확신을 줄 만한 증상이 없으면 나는 불안하다. 


아이가 아프고 나니, 내가 왜 그토록 셋째를 낳는 것이 두려웠는지, 뭐가 그토록 무서웠는지 알게 됐다. 밤에 수 없이 깨는 것, 젖병을 물리는 것, 손목 보호대를 차고 아이를 안아주는 것, 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것, 항상 초췌해져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애들이 이제야 제법 커서 예전보다 병원신세를 덜 지는 것이 행복했었는데, 다시 또 나는 불안감을 안고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진료를 기다려야 했다. 소변검사도 할 테고, 피검사를 하면 어쩌나, 입원해야 되는 일이면 어쩌나, 두 아이는 누가 챙기나. 생각이 또 꼬리를 문다.



열이 이제 막 오르니, 소변검사만 먼저 하기로 했다. 4일이 지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때 혈액검사를 하신다 했다. 이렇게 어린아이 소변검사는 셋을 키우면서 처음이었다. 다소 난감한 소변 패치를 붙이고,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서 핑크퐁을 보여주고, 과자를 주며 수시로 기저귀 속을 들여다봤다. 다행히도 병원에 온 뒤로 기저귀가 젖지 않았기에 소변검사 하기에는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아이는 15분도 안돼서 가득 제 할 일을 해냈다.



병원에 가기 전만 해도 온갖 불안에 떨며, 큰 아이들에게도 화를 내고 집을 나섰는데. 막상 한 번에  소변검사에 성공해 준 늦둥이를 보니 금방 날아갈 듯이 기뻤다. 결과를 듣기 위해 3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마저도 늦둥이는 평온하게 잠을 자 주었다. 예쁘다.



소변검사를 실패해서 1시간을 소요했거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울고불고 진땀을 빼게 했다면 나는 또 좌절했겠지. 힘이 센 늦둥이를 나 혼자 감당하기엔 벌써부터 힘에 부친다. 늦둥이는 패치를 떼다가 간호사 선생님을 발로 찰뻔했다... 점점 더 혼자 병원에 가는 것이 싫어진다. 익숙했던 일들을 이제는 나 혼자 짊어지고 싶지 않다.

성숙해져야 하는데, 나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


5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열감기나 독감에 걸리면, 진료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돼지고기 앞다리와 콩나물, 두부를 사서 들어왔다. 열감기나 독감은 엄마가 5일은 밤잠을 설치며 버텨야 한다. 밥도 제때 먹지 못해, 한번 먹을 때 푸짐하게 먹기 위한 음식을 생각해냈다. 앞다리와 콩나물, 두부, 김치를 넣고 한솥 끓여서 끼니를 때웠다. 다른 반찬 없이도 골고루 먹기 위한 메뉴였다. 그렇게 아이들 간호에 열심이던 나였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다행히도 4일째인 오늘. 늦둥이는 마지막 해열제를 먹은 지 5시간이 지나도록 열이 오르지 않고 있다. 이제 다 나았나 보다. 엄마가 고된 걸 아는지... 두 아이들은 하나가 열이 나기 시작하면, 이틀 뒤에 또 하나가 아파서, 일주일은 꼼짝도 못 했는데. 그러고 보면 늦둥이는 참 효자다. 삼신할가 그래도 나를 조금이라도 가엾게 여겨 이런 아이를 주신 걸까...


엄마가 처음이라 힘들다 하지만, 또다시 엄마가 되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승진도 없는데, 경력이 쌓여도 자부심보다 불안감이 더 쌓이는 이상한 직업이다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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