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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Aug 31. 2021

구구단을 왜 외워야 해?

고마운 둘째

2018년

당시 1학년이던 만복이가 학교에서 두 자릿수 더하기 한 자릿수 덧셈 학습지를 받아왔다. 수지의 하원 시간이 돼서, 학습지를 시키고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만복이는 학습지를 깨끗하게 다 풀어놓았고, 받아 올림이 적혀있지 않은 것이 수상했던 나는 이에게 물었다.


"너, 혹시... 계산기로 풀었어?"


우리 집엔 계산기가 두 개 있다. 만복이 하나, 수지 하나. 만복이는 유치원 시절부터 공룡카드게임을 즐겨하던 아이다. 카드에 적혀있는 파워포인트를 외우고 더하며 백 단위의 덧셈을 계산기로 누르고 놀았다.


"응."


웃음이 나왔다.


"그랬구나. 근데 만복아 이건 계산기로 하면 안 돼."


"왜?"


"너 학교에서 계산기 쓰는 거 못 봤지? 미국에서는 계산기로 푼다고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안돼."


"그럼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해야 해?"


"응"


아이의 학습지를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방에 들어가 직접 풀게 했다.

식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수학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면 또 생각에 잠긴다. 나는 가끔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방식 자체가 아이들의 잠재적 능력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학습지를 다 풀고 만복이가 나왔다.


"만복아, 우리나라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게 중요해."


"계산을 빠르게 하고, 틀리면 안 된다고?"


"응. 그걸로 등수를 매기는 거야. 근데, 엄마는 네가 학습지 숙제를 짜증 내지 않고 스스로 하고, 끝까지 풀기만 해도 좋아. 모르는 건 다시 풀면 돼. 그렇지만 아는데 틀리는 건 좀 아깝겠지?"


나는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사람이다. 등수를 매기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능, 대학, 월급 얘기까지 나올 뻔했지만 8살 아이에게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 더 얘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2학년이 된 만복이는 구구단을 배우기 시작했다.

만복이는 구구단 외우기를 거부했다. 확히 말하자면 만복이의 머리가 거부했다. 문제집을 푸는 시간이 길어지길래 아이에게 물었다.


"너 구구단 외우고 푸는 게 아니지?"


"응"


"왜 안 외웠어?"


"왜 외워야 ? 안 외우고도 풀 수 있어."


그렇다. 외우지 않고도 풀 수는 있다. 계속 더하거나, 어렴풋이 알고 있는 곱셈식 하나로 더하고 빼면 값은 나온다.


나는 또 설명한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게 중요해서 구구단을 외우라고 하는 건데, 너 안 불편해?"


만복이는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안돼서 외우지 않고 있었다. 기억력이 좋은 아이인데도 말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눈에 익어 외우게 될 것 같아 외우기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보기 싫어도 10년은 더 보고 살아야 하는 구구단이니까.


만복이를 데리고 시장에 가던 길. 아이에게 물었다.


"15 곱하기 13 이랑 15 곱하기 11이랑 얼마나 차이 나게?"


"나 그런 거 안 배웠어."


"아니야, 너 구할 수 있어."


아이가 금방 대답했다.


"30"


"맞았어. 왜 그렇게 생각했어?"


"15 곱하기 13은 15가 13개 있는 거고, 15 곱하기 11은 11개 있는 거니까. 15가 2개 차이나는 거라서 30이라고 했어."


기질만큼이나 아이들이 깨우치는 방식도 다르다.

구구단을 외우지 않아도 3X7과 7X3의 결과가 같다는 것도 본인이 발견해서 알고 있던 아이다.

외우지 않았을 뿐, 곱셈의 성질은 알고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했다.




구구단을 배운 지 6개월쯤 지났고, 이제는 전보다 많이 기억할까 싶어서 만복이와 눈이 마주친 내가 외친다.


"육삼?"


옆에 있던 수지가 말한다.


"십팔!"


둘째는 알아서 듣고 배운다.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다.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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