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에서 독립 중입니다

엄마는 모르게 혼자서요.

by 에토프

그동안 슬쩍슬쩍 써왔던 엄마와 나의 관계.

분명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겠고, 끊어내고 싶었지만 엄마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기에 그것도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졸혼을 결심하게 한 그날. 남편은 졸혼이라는 단어로 나름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남편과의 싸움이 있는 동안, 나는 또 엄마와 싸우고 있었다.


셋째를 낳기 전, 두 아이를 데리고 이혼하겠다고 친정에 갔을 때. 엄마는 줄 수 있는 방 한 칸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혼을 반대한다고 하지 않았다.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 말하면서 방은 안된다고 했다. 입은 너의 뜻대로 이혼하라면서, 방을 내어주지 않는 행동은 이혼하지 말라는 것과 뭐가 다를까.


엄마는 단지,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반대했다. 왜냐하면, 엄마는 불안정한 수입 때문에 이혼하고 싶어 했고,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란 나는 안정적인 사람을 택했다.

그러니, 엄마 눈에는 백가지가 별로여도 단 한 가지, 안정적인 수입이면 다 참고 견딜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결혼은 엄마의 결혼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나의 기준은 따로 있는데 엄마는 엄마 기준에 맞추어, 나의 결혼생활은 엄마보다는 나은 생활이며, 이혼은 살얼음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엄마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던 날. 그날도 엄마는 나를 실망시켰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했다.


남잔 다 그래

나도 너희보고 참았어

그래도 돈은 꼬박꼬박 벌어 오잖아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 일이 있고 3일 뒤에 나는 그동안의 심경을 장문으로 엄마에게 보냈다. 죽겠다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죽을 것처럼 보였는지 엄마는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는 그날 엄마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결론을 내려던 게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에게 불안을 주지 않고,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서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엄마는 쳐들어왔고, 애들은 버리고 나만 나오라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서.

아이들 앞에서 너희를 버리고 가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아이들은 할머니 입에서 나온 소리를 다 들었고, 그 뒤로 엄마의 방문을 나보다 더 무서워했다.

남편과 10년을 같은 문제로 싸워오면서도 아이들은 내가 겪은 트라우마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엄마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날, 나는 남편과 엄마에게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람들이 당신들이라 알렸다.

오지 말라고 오지 말라고 해도 기어코 집에 오는 엄마도,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말해도 자기는 자존심이 세서 할 수 없다는 남편도 다 나에겐 가해자였다.

남편과 엄마는 많이 비슷하다.

사람보다 책을 가까이 두는 것도,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속 얘기를 하지 않는 것도,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배려가 없는 것도.

그들은 그들의 말이 맞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날 나의 발악을 듣고, 미안하다며 이제 나의 말을 따르겠다 문자를 보냈다.


한 달이 지나고, 내가 여전히 마음의 문을 열지 않자 엄마는 또 쳐들어 올 궁리를 했다. 연락을 하지 않고 아침 9시에 아빠를 갑자기 보내거나. 주말이면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할 의사를 내비쳤다.

내가 오라고 해야 가겠다던 엄마는 없어졌다.


동생에게서 연락이 온다.

'엄마 언니네 간다는데?'

나는 연락받은 것이 없는데, 동생은 알고 있다.

엄마는 '너희 집으로 출발'이라는 문자 하나만 보내고 우리 집으로 오고 있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나는 엄마가 도착하기 전에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일단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갔다. 장을 보고 들어오며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심장이 또 뛰기 시작했다. 남편 때문에 약을 먹었던 그 증상과 똑같았다. 나를 낳아준 엄마인데도 내 신체 반응은 그랬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이런 모녀관계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나와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딸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에 책을 발견했다.




상처 주는 엄마와 죄책감 없이 헤어지는 법 이라니!

이 책이 배송되어 온 날, 남편은 나에게 딱 필요한 책이라 했다.(......)

책을 읽고 보니, 엄마는 딱 하나 빼고, 상처 주는 엄마에 해당했다. 엄마가 받는 시댁 스트레스나 아빠에 대한 원망을 나에게 매번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마저도 모두 쏟아내는 엄마가 있단다.

뭐, 아빠와 싸울 때마다 "너 안 생겼으면 결혼 안 했을 거야. 너 때문에 결혼한 거야." 라며 내 탓을 하긴 했다. 그 모든 불행의 시작이 나 인 것처럼 말했다. (잠시 쓸 말을 잊었다)


책을 읽으며 모든 문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틀리지 않았어.


상처 주는 엄마들의 특징에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라고 쓰여있다. 그때부터 이 책의 결말이, 나와 엄마의 관계도. 어찌 그려질지 짐작은 갔다.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이혼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박수를 쳤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특정한 계기가 있어서 독성이 누그러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엄마가 변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남편도 엄마도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변해야 한다고.

상처 받은 나를 마주하고, 잘 살아왔다고 격려해주며,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으라 했다.


나는 아직 진행형인데, 엄마는 또 얼굴을 보자고 한다. 그렇게 책 안 읽는다고, 구박하던 엄마 앞에 이 책을 들이밀고 싶다.

딸내미 요즘 이런 책 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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