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건

후회 없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

by 에토프

시아버지가 퇴직하시던 해에 추석이었다.

고된 일정을 마치고 시어머니와 나만 빼고 다들 낮잠에 빠져있었고, 시어머니가 내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저기 가게 아줌마가 바깥양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그러더라?"


"네? 아버님이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그래 검사 좀 받아보라고."


'또 나구나.'


친정부모님은 아픈 곳이 있어도 말을 안 하거나, 알아서 병원에 가시는데, 왜 시부모님의 아들인 남편이 아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 인지 불편함이 느껴졌다. 같이 사는 나보다 나이 많은 솔로인 딸, 형님도 계셨는데 말이다.


신혼 초 가래가 한 달째 목에서 까끌까끌 하신다 하셔서, 병원에 가보시라고 해도, 건강기능식품으로 버티시는 분들이었다. 대안을 말씀드려도 안 하시는 분들이기에 그럼 나에게 왜 가래로 한 달간 불편했다고 호소하시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남편과 살다 보니, 조금은 알겠더라. 남편은 의사 선생님을 싫어한다. 그래서 병원에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의심이 어느 정도로 많아야 이렇게 까지 병원에 안 가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머님이 심은 콩이 확실하다.)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날로부터 10개월 전쯤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었다. 아버님은 친구들을 보러 가신다고 전철역으로 가셨고, 나는 마트에 가던 길이었다. 매서운 겨울바람 때문인지 아버님은 어깨를 웅크리고, 발을 약간 끌면서 좁은 보폭으로 걸어가셨다. 그냥 바람이 너무 차서 그렇게 걷는 것이라 생각했다. 워낙 정적이신 분이라 크게 이상해 보이는 점은 없었다.


"혹시 아버님 어깨 웅크리고 발을 좀 끌면서 걸으세요? 종종걸음처럼?"


"응 좀 그런 것 같아."


나는 검색을 시작했고, 금방 파킨슨 환자의 걸음걸이 영상을 찾아내 시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이거 보세요."


"그래, 이거 비슷하네."


파킨슨. 티브이에서나 보던 그 파킨슨이었다. 60대 초반에, 퇴직을 하고 이제 좀 여유가 생기나 했던 그 시기에 암울한 것이 먼저 아버님을 찾아왔다.


서울로 올라와 시댁 근처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시아버지의 상태를 말하고,

교수님을 추천받았다.


"이럴 때 며느리가 잘해야 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교수님 성함을 말씀드리고 외래진료를 예약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그 길로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에겐 6주마다 잊지 않고 병원에 가야 하는 두 아이들이 있었으니.


검사를 마치고, 아버님은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다.

60대 초반의 나이에도 파킨슨은 흔한 병이었고, 50대에, 40대에도 발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아버님은 발병한 지 2년이 안되어서, 증상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은 터라 희망적이라 하셨다. 완치는 불가능해도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는 더디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고, 약값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족 모두들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나만 빼고.



파킨슨 진단을 받으신 뒤에도 아버님은 많이 드시지는 않았지만 예전처럼 술을 드셨다. 악영향은 아니어도 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요일 밤. 아이들을 재우기 전이였는데, 남편이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고 계신다고.

친구들과 서울에서 술을 드시다가 파킨슨을 고백하셨는데, 깜짝 놀란 친구분이 아버님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달려오고 계신다 했다. 그 친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셨겠지.


방 하나를 내어드리고, 나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술 취한 아빠를 피해 결혼했더니, 술 취한 시아버지가 있었고, 아침부터 해장국을 끓일 생각을 하니 답답했다. 그리고 기껏 병원 예약해서 남들보다 빨리 파킨슨 진단을 받으시게 한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다음날, 아버님은 해장국을 드시고, 첫 손자의 등원까지 다 보신 후에야 시댁으로 가셨다.

몇 번이고 술을 그만 드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이 손자를 보고 허허 웃으시는 시아버지를 보니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아버님이 고속버스를 타실 때쯤, 건강 생각하셔서 술을 줄이셨으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버님은 술을 줄이겠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잘 있다 간다는 말씀만 하셨다.


6년이 흘렀다.


친정엄마는 고혈압약을 얼마 전부터 복용 중이고, 당뇨도 조심해야 한다.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이명에, 발목은 퉁퉁 부어있고, 가끔씩 허리도 삐끗한다. 그런데도 엄마는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쉬는 날은 항상 어디든 콧바람을 쐬러 가야 한다.

왜 식단관리도 하지 않고, 퉁퉁 부어 퍼런 발목으로 이곳저곳 안 다니는 곳이 없는지 의아했다. 시아버지가 파킨슨인데도 술을 멀리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친정엄마는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친정엄마가 배고플 때 전화하면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 조심해야 한다. 외할머니는 십여 년을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누워만 계시다 돌아가셨다. 엄마가 명절마다 손에 쥐어준 용돈을 한 푼도 안 쓰시고 그대로 남겨두신 채.

우리 엄마의 한 이다. 그래서 엄마는 내게 실컷 먹고, 실컷 즐기다가 갈 거라고 했다. 우리가 드리는 용돈도 다 쓰고 갈 거라고. 그래야 자식들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6년 전엔 몰랐다.

진단을 받고도 바뀌지 않는 시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고 나니, 이제는 좀 알겠다.

나와 친구들은 건강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시아버지와 엄마에겐 건강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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