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게 된 인연, 그때는 몰랐던 ‘믿음’의 힘
연이라는 말들을 자주 들어본 적이 있다.
피천득 시인의 인연에서는 아사코라는 여인을 평생에
세 번 만나게 되면서 일어난 일들을
낭만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문득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인연의 만남이 있었고, 앞으로도 생길 것일지 궁금해졌다.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건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먼저 현시점 가장 의미 있는 인연인 것은 나의 사회 초년생 모시던 대표님을 20년 가까이 지나서
다시 모시게 된 일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imf 가 온 나라를 힘들게 하던 시절, 나는 호기롭게 친구와 창업을 시작했다.
물론 모아둔 돈도 없고 인맥도 실력도 없이 패기 하나만 가지고서 말이다.
회사 이름도 broken AD라고 항상 술자리에서 깨는 광고 좀 해보자는 안줏거리가 회사명이 되었다.
당연 경력도 없는 우리는 원청의 클라이언트 수주는 어려웠고,
마침 업계 대행사 계시던 한여성 실장님께서 독립을 하셔서
첫 일의 시안 작업을 외주로 받을 수 있었다.
패션 카탈로그건, 욕조 카탈로그건 2건의 인쇄 광고 물건이었다.
당시 잘나가던 대행사 실장님이라서 오픈하자마자 수주를 하시게 된 것이다.
한창 시안 작업 중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2주 동안 경기도 구리시의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일이 생겼다.
같이 하던 친구도 갑자기 취업을 하게 되고 약속된 날짜는 가까워지고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에 조기에 병원을 나와 직접 회사로 출근하면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맡은 일이 끝나고 나는 대표님의 권유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의 페이퍼 넷 생활. 첨 시작한 작은 회사( 보증금 500에 월세 50) 라
시안, 촬영, 작업, 영업. 접대 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결정도 직접 하고 보고하는 일도 많았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마음이나 태도, 일에 대한 도전 정신은 그때의 대표님께 배운 것이다.
그 후 사진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유학 후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패션 포토그래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기회를 주시기도 하셨다.
그 후 페이퍼 넷은 승승장구해서 업계 1,2위의 큰 회사로 성장하시고 강남에 사옥도 지으실 정도로 성공하셨다.
그 후 매년 인사 정도만 드리고 지내오다 미국서 돌아와서 오랜만에
인사차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힘든 시절 서로의 신뢰감 하나로 뜻이
모아져서 다시 대표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동업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다. 대부분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고 겪어봤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목표가 같고 서로 믿는 신뢰가 있다면 헤어질 때도 멋있게 헤어질 수 있다.
우린 이제 3년 차의 신생 회사일뿐이다.
각자 필드에서의 노하우와 관록이 새로운 열정에 녹여지면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재밌는 에피소드 같은 인연 하나가 있었다.
2000년대 런던 유학 당시 나는 펍과, 일본 가라오케를 하는 식당에서
파트타임을 한 적이 있었다.
주 고객들은 일본 주재원들인데 어느 날 같은 건물에 무기를 구입하는 한국 회사 직원들이
왔었다. 아마 한국서 온 손님 접대 차 온 모양이었다.
한창 술자리 무르익어가는 도중 어떤 노래를 신청했는데 내가 리모컨 넘버를 잘못 눌러
해군가라는 노래가 나오게 되었는데,,, 다들 우와 하면서 어떻게 알고 눌렀냐고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손님으로 오신 분이 당시 해군 참모 총장이었었다.
이건 우연이라고 봐야 될 듯...
그런데 이름이 낯이 익어 생각해 보니 나의 해군 시절 근무했던 군함의 함장님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군 시절 타던 구축함(광주함) 함장 군무하시지 않으셨나고 묻고
맞는다고 하셔서 ,,,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유학생이라고 팁까지 크게 주시고 즐겁게 계시다 가셨던 우연치곤 황당한 인연 이야기이다.
지금의 회사 구성원들은 대부분 나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주축을 이루는 실장들은 대학 졸업 후 첨 나의 회사에 입사해 10년 동안 연이 이어져
다시 모이게 되었고, 다른 직원들 역시 처음 아르바이트생부터 시작해 성장하여
실장, 팀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뿌린 인연의 씨가 자라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의 화단에 ,,, 물론 물값이 좀 들긴 한다만,,,
그래도 다시 모여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최대한 대우를 해주려고 한다.
직장인 병은 어떤 치료 보다 금융 치료가 젤 효과적이다.
누군가에게 인생의 멘토가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지게 살아왔다는 증거이자 상징일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이다. 나의 인연들은 이제 한 권의 책처럼 이어지고,
나는 그 책의 저자로서,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어쩌면 내가 뿌린 작은 씨앗들이, 어느새 큰 나무가 되어 꽃을 피우는 모습이 그려질지도 모른다.
인연은 이렇게 묘하게 얽히고,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