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남편, 토성 아내?
한 십 년 전쯤, 머리가 너무 길어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에 퇴근 후 회사 근처의 허름한
(아, 아니 빈티지한) 미용실에 들어갔다.
가게는 오래돼 보였지만, 미용사분은 나보다 어려 보여서,
어쩌면 말귀를 잘 알아들을 것 같아 들어갔던 거였다.
마침 앞 손님의 스타일링 작업이 남아서,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제목이 ‘화성 남편, 토성 아내’였다. 그
러니까, 남편과 아내의 성격이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였는데,
내용은 다소 예상 가능한, 고전적인 부부 갈등 이야기였다.
책의 줄거리는 대체로 이랬다.
주 내용은 서로 다른 환경애서 자란 부부가 만나서 생기게 된 감정트러블이다.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동네에서 공부 잘하기로 어릴 때부터 소문나서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이고 아내는 중산층 이상의 서울가정에서 태어나
아쉬움 없이 자라고 돈 안 되는 음악을 전공한 후 졸업과 함께 결혼하게 된 여성이다.
서로 다른 성향이 처음에는 호기심, 사랑 뭐 이런 걸로 눈을 멀게 했었지만
아이를 낳고 세월이 가면서 재테크, 교육, 투자, 등 사소한 것까지 다름이 서로를 힘들게 한 것이다.
예를 들면 남편의 말은 자기는 휴지 한 장도 아껴 쓰고 동네 어른들한테도 인사도 잘하고 하는 스타일인데
아내는 화장할 때마다 티슈 한 통을 쓸 정도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안경을 너무 자주 잃어버려 사곤 했는데
이사할 때마다 장롱 밑에서 통장, 안경 등이 서너 개씩 나왔다고 한다.
아내 말로는 남편은 짠돌이에 낭만 같은 건 전혀 없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몰래 주식으로 제법 큰돈을 날리기도 하고...
이 부부가 미국에 정착하면서 교회에서 어떤 분이 MBTI 테스트를 해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좋아질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는 테스트를 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의 성향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면서 가정이 다시 안정적이게 되었다고 하는 해피엔딩 스토리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직장 동료들에게 이 MBTI 테스트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결과가 정말 잘 맞았다. 그중에서도 한 친구는 테스트를 거부했는데,
그 친구의 결과는 정말 딱 맞아떨어졌다.
마치 ‘운명처럼’이라고 할까? 당시엔 사람들이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 ‘A형은 좀 내성적이지?’ 혹은 ‘O형은 활발하겠지?’ 뭐 그런 식으로 성격을 짐작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MBTI로 바뀌었다.
요즘은 MBTI를 흔하게 묻고 대화하는 요소가 된 거 같다.
소개팅하기 전 먼저 물어보고 만남을 결정을 하기도 한단다.
어차피 안 맞을 거면 첨부터 만나지도 않겠다는 이유인 건가? 어떻게 보면 효율성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가타카'라는 영화가 있다.
미래에 유전자로 인생이 정해지는 세상에서 나쁜 유전자의 주인공이 정면으로 돌파하여 성공하는 감동적인 내용의 영화이다.
사람의 성향, 성격을 4가지 큰 형태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 모토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할 게 될 것이다”였는데,
이번만큼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지
금의 나는 테스트 결과대로 살고 싶어진다.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이제 그냥 이렇게 살아야겠다!’라고 말이다.
그게 바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성향이고,
이제 ‘사람을 이해하려면 MBTI부터 먼저 파악하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테스트를 다시 해본다.
혹시나 또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