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와인을 사는 시대
어느 날, 문득 편의점에 가보니 와인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마치 꿈속의 풍경처럼, 여기저기서 “나를 사라! “라고 외치는 와인병들이 보였다.
이제 와인은 더 이상 전문주류샵에서 사는 고귀한 존재가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러 가도 ’오늘 기분은 뭘로 할까?’라는 고민이 생긴다.
물론 가격도 다양해지고, 품종도 여러 가지로 바뀌어서 골라 먹는 재미가 하나둘 생긴다.
어렸을 적, 술자리에서의 ‘설렘’이란 것은 그다지 자주 느껴본 적 없이 없다.
항상 폭음과,
그 다음날 아침에는 숙취와 ‘후회로 가득 찬 나’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술은 그렇게 자주, 의미 없이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한 건, 매번 마시는 술이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그날의 기분이 바뀌면 술맛도 바뀌는 법. 그런 날들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술맛은 ‘술’이 아니라, ‘그날의 나’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매일 같은 술을 마시는데 왜 맛이 다 다를까?
술맛이 다르다기 보단 술 마시는 날의 감정이 뇌를 그렇게 자극시키는 거 같다.
한동안 소주를 마실 때는 3사 소주 맛을 구별할 정도로 술맛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제 와인은 내 일상이 되었다.
제대로 한번 공부를 해야겠다고 청단동에 위치한 영국 와인 학교에 등록을 했다
와인에 대해 배우는 것은 거의 ‘역사의 깊이를 파고드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프랑스어로 된 와인 지역 이름을 보며, 그럴듯하게 손톱을 깨물며 공부를 시작한 나는,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와인의 세계’는 나를 매혹시켰다.
‘샤또’라던가 ‘테루아’ 같은 단어를 배우는 게 꽤 재미있었다.
마치 내가 예술품을 다루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와인의 ‘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나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했다.
색깔, 향, 맛, 그리고 ‘이 와인이 어떤 지역에서 왔는지’까지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점점 내 감각이 더 예민해져 가는 것 같아 신기했다.
와인을 공부하는 동안 점점 더 와인의 진정한 맛을 느끼게 되었다.
어찌 보면 프랑스는 조상을 잘 둔 덕분에 축복받은 땅에서 자리는 포도로 최고급 와인을 만들 수 있었을 수도 있다.
돌아보면 와인을 처음 마시기 시작한 시절은 런던 유학 시절이었다.
한국 슈퍼에서 사는 빨간색 두꺼비 소주 1병 살 돈이면 와인을 3,4병도 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질보다 양우선의 가난한 유학생에겐 당연한 선택지였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 와인을 제일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와인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기술이나 와인에 대해 교육하는 꽤 유명한
학교들이 많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랑 비슷한 감정과 역사적 맥락이 있다.
당시 (2000년대) 파리 같은 대도시 말고는 영어로 대화하기 어려웠다.
영어로 물어보면 이해했으면서도 모른다고 프랑스어로 하라고 한다.
특히 1,2 차 대전을 겪은 노인들은 정색을 한다.
우리가 사진 찍을 때 손가락으로 v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에서는 프랑스인한테 하는 가장 모욕적인 욕 중의 하나이다.
중세 시대 전쟁 시 프랑스군이 활을 잘 쏘는 영국 궁사들을 잡아서 손가락을 잘라서 활을 못 쏘게 하는 역사적 사건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러나 입맛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인가 보다. 와인은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서 수입을 해야 하니..
그래서인지 요즘 말로 눈퉁이 맞지 않겠다는 생각에
가장 까다롭게 분석하여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겠다는 학술적 근거를 위한 교육 기관들까지
만드니,,,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 발행하는 소믈리에 자격증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가치이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 땅은 척박하고 쓸모가 없는 땅이 많은 편이다.
많은 것을 외부에서 얻어야 하다 보니 도전적이고 역시적으로도 식민지 확장을 위해 힘썼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것을 얻거나 구입을 할 때 합리적인 가치를 분석하는 기술,
교육 등의 이 매우 발달하여 좋은 학교들이 많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주세가 비싸서 와인이 비싼 편이다.
최근 들어 젊은 친구들이 다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와인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와인들도 수입되고 전통적인 유명 와이너리 대량 생산 와인이 아닌
게러지 와인, 컬트 와인이라는 소규모 와인들도 유명해지고 정말 폭넓은 선택의 시대이다.
뉴욕 생활할 때 가끔 가던 롱아일랜드의 월터 에스테이트라는 와이너리가 있다.
위대한 개츠비 영화 나오는 동네 근처인데 바다를 끼고 있어 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높고 뉴욕과 가깝고 해선지 유명 와이너리가 서너 개가 모여 있다.
특히 월터 에스테이트 와이너리는 뉴욕의 고급 루프바 같은 곳에서
파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가을에 가면 프랑스 보르도에
온 거 같은 아름다운 와이너리 풍경으로 직접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아티스트와 콜라보 한 꽃 일러스트의 유니크한 레이블과 와인 로제가 서머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들어와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동내 입구에 새로 생긴 규모가 있는
와인숍에 가 프랑스에서 살으셨다는 젊은 사장님과 아는 척 몇 마디 나누다가 상술에 홀려
잔뜩 눈퉁이를 맞고 돌아와 와인셀러를 채우고 나면 흡사 월급날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