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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키 (COST TO COST)

삼천리 로고가 진지하게 빛나다

by 함수규


삼천리 로고가 진지하게 빛나다





내가 처음 자전거를 만난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사이클”이라고 불리던 자전거 한 대가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었다.


새 자전거는 당연히 꿈도 못 꾸는 형편이었기에, 아버지께서 중고 자전거를 구해주시기로 하셨다.


것도 동네 입구의 ‘삼천리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는 자전거 가게에서 말이다.


빨간색 전기 테이프는 핸들바에 감기며, 그때부터 자전거는 나만의 첫 탈것 되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자전거는 불과 3개월 만에 도둑에게 빼앗겼다. 그때의 시대엔 좀도둑이 많았었다.


어릴 적 그때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름값 아끼려던 순수한 시작





2003년, 내가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기름값이 너무 비쌌다. 당시 이제 막 스튜디오를 오픈한 시기라 아직 일도


별로 없었고 잦은 술로 살도 많이 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도 할 겸. 대체 교통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사람 많은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것도 귀찮았고,


그래서 일단 돈 안 드는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당시 신문을 구독하면, 아메리칸 이글이라는 10만 원짜리 유사 MTB 자전거가 사은품으로 딸려오는 행사가 있어 구매를 했다


그때부터는 매일 출퇴근길을 MTB와 함께 했다.


다만, 이 자전거는 말 그대로 ‘유사’ MTB라서 엄청난 무게에 형편없는 성능의 자전거였다


자전거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몸이 지쳤다.


하지만 그 한강 자전거길에서 느낀 자유로움은 나를 또다시 자전거의 세계로 이끌었다.









마린





몇 달 후 진짜. 자전거를 사보자 하고.


처음으로 기변을 했던 자전거는 마린이라는 대만 브랜드의 하이브리드형 자전거였다.


사실 이 자전거는 50만 원에서 60만 원 사이로 구매할 수 있었던 그 당시의 나름 내 기준에선 ‘고급’ 자전거였다.


마린을 타고 첫 제주도 일주를 하면서 조금씩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짭짤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던 자전거 페달 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리고 그 후에 나는 ‘더 나은? 더비 싼 자전거’를 찾기 시작했고,


그 열정이 내 인생자전거 비앙키를 만나게 만들었다.









국토 종주? 그거 나도 할 수 있겠어!





그 후 이제 진짜로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단순히 운동이나 출퇴근이 아니었다.


“국토 종주! “라는 멋진 목표가 생긴 것이다. 두 번째 구입한


스캇 로드 바이크를 타고,


당시에는 지도만 보고 가야 했던 4대 강 자전거 도로도 없던 시절에 도전이 시작됐다.


둘째 날 호기롭게 대구까지 갔다가 같이 간 친구가 무릎이 아파서 고향 울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다시 울산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해안 도로를 타고 결국 완주했다.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첫 번째 국토종주었다.


지금도 그때의 용감 무식한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앙키 인피니토, 자전거로써의 모든 것





국토 종주를 했으니 명분이 생긴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 브랜드 중에 하나인 비앙키라는 이태리 브랜드인데, 체레스터의 오묘한 칼라와 로고가


공돌이가 만든 거 같은 타 브랜드 디자인에 비해 너무 세련되고 그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자태와


수많은 레전드 라이더들이 투르 드 프랑스, 지로디 이탈리아, 등 대회를 우승했던 브랜드만큼 아우라가 풍겼었다.


요즘은 국내에서는 성능보다는 디자인을 주로 언급하고 극단적으로는 패션 자전거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성능도 상당히 좋은 자전거를 생산하는 브랜드이다.


처음에는 임풀소라는 엔트리급 비앙키 로드에 발을 들였다.


집안, 사무실 안까지 가지고 들어갈 정도로 소중하게 타고 다녔었다.



비앙키의 세계에 들어오니 형들, 누나급, 아버 자급들의 하이엔드 기종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카페를 가웃 거리다 시세 대비 너무 착한 가격의 어머니급의 인피니토기 종이 매물로 보란 듯이 나왔다.


이건 일단 사서 다시 팔아도 100만 원은 남는 장사야 하면서 자기 위안에 도취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구매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스럽게 그 인피니토가 그 후 10년 이상 나의 애마로 같이 오게 됐다.


그리고 4대 강 완주, 국토종주, 속초, 뉴욕 그란폰도 대회까지....



그 사이사이 브롬튼, 셜리, 캐논 데일. 등 다양한 다른 카테고리 자전거들도 거쳐갔었다.


지금은 자전거 산업계에 커다란 혁신이 몇 번이나 거쳐간 시대이다. 브레이크도 디스크로 다 바뀌고


구동계도 di2라는 전동으로 바뀌고 파워 미터도 장착된 기종들


더 나아가 전기로 100킬로를 가는 시대이다.



이에 비해 지금의 비앙키 인피니 또는 잘 유지한 포르셰 911 초창기 모델 같은 감성이 있다.


가끔 한강변 라이딩 하다 보면 반갑게 물어보는 분들도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전거 구매가격이 천만 원이 시작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취미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실제 주말에 퇴촌 집을 가다 보면 수많은 라이더들이 라이딩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앙키 자전거를 타고 있다.






결국, 자전거가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자전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저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인생의 일부로, 일상의 일부로,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매일 자전거를 타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이 오고, 자전거가 다시 내게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나는 또다시 ‘시즌 오픈’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후배들을 강제로 끌고 나가서, 강제 라이딩 시즌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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