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노트, 케니G, 그리고 미사리
70,80 년대, 우리세대는 영화를 통해 뉴욕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 뉴욕은 그저 먼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인종과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교차하는 거대한 도시,
그 자체가 하나의 영화처럼 느껴졌다.
내게 영화속에 뉴욕은 그런 도시였다. 가슴을 뛰게 하는,
한 발자국만 다가가면 바로 그 영화 속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도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흔이라는 나이에 드디어 뉴욕에서 살 기회가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의 뉴저지 포트리라는 동네에서 살게 되었다.
조지워싱턴 브리지를 건너면 할렘이라니,
그때의 내 마음은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설레었다.
할렘, 그 무서운 소문으로 가득 찬 동네. 하지만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브루클린,
그 옛 영화 속 감성도 점차 흐려져 갔다.
그래도 내가 여전히 그때의 영화 속을 떠도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영화 덕분이었다.
이제 뉴욕의 전설적인 재즈 클럽 블루노트를 방문할 때마다,
내겐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든다. 블루노트는 그야말로 쿨 재즈의 성지였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초기 공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블루노트는 관광지처럼 변해버렸고,
그런 변화는 하와이에 있는 블루노트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어느 날, 그곳의 출연진 사진에서 케니G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저 “아, 이게 바로 10년 전 미사리의 분위기와 다를 바 없구나” 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뉴욕에서 아직 본래의 색깔을 간직한 곳은 없을까? 다행히도, 그건 할렘의 코튼 클럽이었다. 할렘의 코튼 클럽은 여전히 흑인 교회 단체의 공연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요일 낮 시간 공연은 마치 부흥회처럼 느껴졌다. 낯선 아시아 한 가족이 유일한 관객으로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어머니 나이대의 여성 보컬이 마이크 하나만 들고 3시간을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그 소울 넘치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이제 영화 속 음악 이야기를 해보자. 바로 **“Mo’ Better Blues”**라는 재즈 영화다.
1990년대 덴젤 워싱턴과 웨슬리 스나입스가 출연한, 재즈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연주는 윈턴과 브랜 포트 마살리스 형제의 쿼텟 연주로,
그 퀄리티는 말 그대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특히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색소폰 연주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 연주는 마치 내 마음을 꿰뚫는 것처럼,
그 강렬함과 슬픔이 느껴졌다.
영화는 허구의 인물과 스토리를 따라가지만,
한편으로는 쳇 베이커의 인생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흑인 재즈 뮤지션의 삶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음악으로 풀어낸 수작이었다.
나는 그 LP와 CD를 동시에 구입해 집과 차에서 수도 없이 들었고, 그 음악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보면서 멋있다고 느꼈던 씬중에 하나인데.
영화 속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주인공인 브릭(덴젤 워싱턴)이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우울하게 연주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흑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인종차별과 어두운 삶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우울한 연주는 그냥 음악 이상의 것이었다.
마치 삶의 고통과 절망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끝은 주인공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그 결말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게 뭐야, 너무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결말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전성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그 전성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을 잘 활용하느냐,
그리고 그 소중한 순간들이 지나가면
그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더 실감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삶의 전성기는 지나간다. 그 시절을 얼마나 잘 보낼 것인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얼마나 평범한 행복을 꾸려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 평범한 행복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