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deal
영어 표현에 굿딜이라는 단어가 있다.
말 그대로 서로 협상 중에 결과를 도출할 경우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요즘은 회사 직원들과 연봉 협상기간이다.
회사 생활할 때는 올려주면 주나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보냈던 나다.
오히려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회사 걱정이 먼저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10년 동안 연봉이 동결된 호구였기도 하다.
20대 3년 정도 디자인 기획사 일하다 유학 후 바로 프리랜서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연봉에 대한 개념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거 같다.
직원들도 기준도 없이 인상해 주기도 하고...
어떤 해는 연봉 상승 금액보다 보너스를 더 많이 주기도 하고,
중고차를 사주기도 하고,,
그냥 단순하게 힘든 시기에 같이 고생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에서 나간 비용들이다.
그러나 2009년부터 다시 시작한 10년 동안의 회사 생활에서
연봉이 얼마나 구성원 각자에게 중요한 기준인지 볼 수 있었다.
100만 원에 이직을 하기도 하고 연봉이 깎여도 어떻게든 다니려고 하고..
과연 회사에서 나는 가성비 좋은 구성원이었을까?
단순하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10년 동안 연봉이 동결이었으니,,
그럼 나는 호구였을까?
그럼, 나는 과연 호구였을까? 아니,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뿐,
그때 그 시절은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 시간들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굿딜’이었다.
글쎄,, 나는 굿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첫째. 나의 카테고리에서 겪어보기 힘든 대기업 생리와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알게 됐다.
둘째, 아티스트에서 관리 경영자로 자연스럽게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를 겸하게 되면서 객관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다.
셋째, 비자 문제없이 미국 생활하면서 사춘기 소녀 딸과의 친구 같은 관계성을 갖게 되었다.
보너스로 영주권과 딸이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넷째, 이건 성향 문제이지만 나이랑 관계없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맘이 생겼다.
그래서 맨땅 아닌 맨땅, 5년의 한국에서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등등...
쥐어짜면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사측 같아서,, 여기까지.
가끔 힘들 땐 돈으로 환산해서 비교해 보기도 했다.
연봉이 인상됐을 때의 총액과 그간 얻은 경험을 내 돈으로 하려 했을 때 들어갈 비용을.
그럴 때마다 지나간 버스를 쳐다보는 느낌이랄까.. 결론은 별 의미 없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가치관도 달라졌다.
예전엔 부르기 전에 ‘연봉 올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들의 당당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히 돈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연봉 협상에 들어가면, 내 마음속에 ‘치사한’ 계산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 명, 한 명과 얘기를 하면서 AI처럼 반복되는 말들을 듣고,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제를 깔고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고민하며, 그들의 입장과 내 입장을 동시에 이해하려 한다.
결국, 내 목표는 이 해를 마무리할 때까지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회사가 조금이라도 나를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연봉 협상은 그저 금전적인 보상이 아닌,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 어떻게 변했는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해도 자신감을 갖고 맞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여정은, 다시 한번 나의 인생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