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벌써 귀국한 지 4년 차가 되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정말 빠르게 가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오늘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갈까?
” 그동안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니, 시간은 언제나 제 속도로 흘러가는 법이지만,
나이 들수록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것 같다.
생각난 김에, 내 일주일의 일과를 적어보았다.
• 월요일 & 목요일: 산티아고 트레이닝
걸어서 출근하며, 마치 산티아고 순례자처럼 생각하며 걷는다.
하루의 시작은 이 작은 도전에서부터 시작된다. 트레이닝을 하고, 길 위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 화요일 & 금요일: 피아노 학원
치매 예방 겸, 언젠가 딸아이의 결혼식에서 공연할 계획을 세우며 피아노를 치고 있다.
건반을 두드리는 동안, 딸과의 추억도 함께 깨어나는 것 같다.
• 수요일: 퇴촌 나들이
전원주택 유지 관리를 위해, 시골로 가는 길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한 자연 속에서 삶의 여유를 다시 찾는다.
• 목요일: 아빠 병원 방문
매주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날이다.
가족이라는 책임감에 묶인 시간은 때로는 무겁기도, 때로는 따뜻하기도 하다.
• 토요일: 제과, 제빵 학원
취미이자 노후 준비를 위한 기술 연마 시간이다.
제과와 제빵을 배우며, 내 인생의 달콤한 순간들을 쌓아간다.
쿠키나 케이크처럼, 내 삶도 작은 성취들로 채워진다.
우리 가족은 미국 영주권자이다.
2019년 초, 그 귀하고 취득하기 힘들다는 미국 영주권을 얻었을 때,
정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영주권이란 단순한 논리로 취득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영주권의 목적은 미국인이 기피하는 일을 외국인이 하여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고,
그로 인한 합법적인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제도이다.
즉, 범죄자나 고령층, 혹은 부양가족이 많은 이민자는 이 제도를 이용하기 어렵다.
미국은 ‘개척의 나라’, ‘성공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사람들이 온 나라인 만큼, 영주권은 그들의 꿈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영주권을 취득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 트럼프 같은 보수적인 집권 시절에는 문턱이 더욱 높아졌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정말 많은 사연을 가진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그들의 삶은 때로는 기적 같고, 때로는 씁쓸하다.
특히, 한국의 3세대 이민자들이 미국 곳곳에서 안정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예전 런던의 뉴몰든 한인타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LA나 뉴욕의 한인타운은 거의 ‘도시’ 수준의 큰 규모이다.
영주권은 연방 정부가 주는 것이지만, 회사 생활을 통해 세금을 낸 기록을 바탕으로 판단된다.
그 덕에 작은 회사에서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는 대신, 적은 연봉만 받고 힘겹게 일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미국에서 20년을 살고 있는 내 대학 동창은 영주권 때문에 10년 동안 한국을 못 돌아왔었다.
지금은 외국계 회사에서 매니저로 연봉 1억 이상을 받으며 뉴욕에서 살고 있지만,
그때의 고난은 그의 인생의 큰 시험이자 시련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런던에서 유학할 때, 영주권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달았다.
다행히 우리 기족은 복잡하지 않은 미국 비자 히스토리와 IT 기반의 이커머스 기술직 부부, 단출한 가족구성으로 별문제 없이 영주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내 주변을 보면 부모를 따라와 정착했지만, 부모가 불법체류 상태인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이들은 ‘다카’라는 비자 신분을 가지고,
1년에 한 번씩 비자 연장을 해야 했다. 평생을 미국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범죄나 탈세만 해도 바로 추방될 수 있는
그들의 삶은 마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영주권자와 금전적인 이유로 계약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무서운 것은, 영주권 인터뷰에서 배우자 속옷의 색깔까지 묻는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영주권이라는 제도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한국에서 살면, 미국 영주권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세금 신고만 두 나라에서 하느라 세무 비용만 더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올해 딸아이의 마지막 학비를 내면 영주권을 포기할 생각이다.
미국 대사관에 가서 신청하고 서류를 보내는 과정은
그때의 복잡한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하는 생각에 조금 짜증이 난다.
그리고 영주권 혜택의 한 가지 가장 좋은 점은,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이 영주권을 가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시스템이다.
내 딸은 그 덕분에 대학 4학년이 되었고, 그 혜택을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취미로 여러 자격증을 따면서 깨달은 것은,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부와 노력이 들어간다.
이 과정은 최소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
슬프게도, 영주권도 그만큼의 노력만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세상은 ‘얻은 만큼 잃는’ 법이다.
이 모든 경험들이,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며,
나는 그 속에서 점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나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영주권이란 목표를 이루면서 얻은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겪은 경험들이 내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오늘도, 내일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 흐름에 맞춰 내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