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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결론: 낮술은 금물”

by 함수규


살면서 낮술을 마셔본 적이 서너 번 정도 있다.


이걸 좋아하지 않는다. 빨리 취하고, 그럼 남은 하루는 엉망이 된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낮술에 대한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


낮술을 마시면 끝이 안 좋다는 걸, 확실히 체득했다.


, 그럼 내 인생 흑역사를 풀어보자.






“첫 사회생활: 권고사직과 막걸릿집”





대학을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때의 회사에서 해고당한 경험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권고사직’인데, 나에겐 그 둘은 같은 의미였다.


졸업 후 취업을 한 친구의 소개로, 당시 잘 나가는 패션 대행사에 면접을 보러 갔었다.


면접에서 나름 준비한 덕분에 잘 마친 것 같았고,


기대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뒤, 면접 본 팀장님이 나를 불러 밖에서 만나자는 거였다.



그 팀장님이 곧 자기가 회사를 차릴 것이라면서


내게 자기 회사에 입사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어디든 상관없다”며,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작은 사무실이 있는, 낡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5층 구석방에서


시작한 첫 사회생활. 월급 30만 원의 인턴으로서, 정말 열심히 했다.


디자인부터 인쇄소 감리, 심부름까지 다 해냈다.


당시 여자친구도 회사에 와서 도와줄 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내가 얼마나 유용한 직원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했건만, 3개월 후 점심시간에 대표님이 나를 불렀다.


술을 전혀 못 하시는 대표님이 막걸리 한 잔을 주시면서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결국 “너는 디자이너보다는 포토그래퍼가 더 잘할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는 충격을 받아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감 중 하나였고,


낮술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포토그래퍼로의 길, 그리고 10년 후의 만남”





그 후 3년간 나는 상처를 잊은 듯 다른 대행사에서 일했고,


30살이 되던 해에는 영국 런던으로 사진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한창 바쁘게 포토그래퍼로 활동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새로운 대행사의 작업 미팅으로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그 회사의 대표가 바로 내 첫 번째 회사의 실장님이었던 것이다.


회사명이 바뀌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작업이 잘 마무리된 후.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그때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실장님은 “사실 너의 사진을 지켜보면서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같이 작업하자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때 나를 데리고 일할 때도, 언젠간 헤어질 운명이었기 때문에 미리 얘기한 거라고 덧붙였다.


10년 후 그때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사실 그분은 내 열정을 일깨워 준 사람이었고, 그게 고맙게 느껴졌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리고 말 한마디의 책임감”





10년 후, 나는 그때의 대표님보다도 한참 나이가 많아졌다.


지금은 30명이 넘는 직원들을 하나하나 성향을 파악해서 채용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경험과 확률의 시스템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인재를 뽑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제 인생 선배로서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린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항상 고민한다.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






“결론: 낮술은 금물”





이제 나는 술을 밤에만 마시기로 했다. 낮술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그때 술 한 잔에 취해 일을 그르친 것처럼,


낮술은 내 인생의 후회를 키운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그렇게 받아들이며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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