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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온 502호의 세입자

완전체라는 것에 대하여

by 함수규

미국에서 온 502호의 세입자

요즘 우리 가족은 완전체다.



이 표현을 떠올릴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4년간 미국에서 유학하던 딸아이가 돌아왔다.


그 아이는 1년 정도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은 뒤,


다시 미국으로 갈 계획이다.



졸업 후 바로 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요즘 미국의 취업 시장이


신입들에게는 그리 친절하지 않은 분위기라고 했다.



물론, 한국도 그다지 녹록하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딸아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으니,


그걸로 충분히 만족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제 진짜 사회인이 되는구나.”


하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미국에서 온 502호의 세입자



딸아이는 반 독립 상태다.


우리는 집 근처의 502호 원룸을 그녀의 공간으로 내주기로 했다.



사실 원래 502호는 월세를 받아 대출 이자에 보탬이 되는 구조였는데,


졸지에 딸아이에게 방도, 돈도 내어주게 되었다.



경제관념이 철저한 나에게는


작지 않은 손실이었다.


이걸 손실이라 불러도 될까 싶긴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함께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손익 계산보다 앞섰다.



그래도 나름대로 타협은 봤다.


공과금을 포함해 월 50만 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이건 가족 간의 공정한 거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DNA와 직업적 유전자



지효는 전공과 직업 면에서 나름 어드밴티지가 있다.


나는 올해, 대형 광고 대행사 출신 친구들과


같이 사무실을 쓰기 시작했다.



대행사 출신의 디자이너들,


광고 기획자들,


세상을 조금 더 날카롭게 보는 사람들.



그런 환경 속에서


딸아이는 자연스럽게 인생 경험과 조언을 듣게 될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안정적인 길을 걷길 바란다.


그러나,


딸아이는 나처럼 필드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괜찮을까?”


“너무 힘들진 않을까?”



그런데 문득,


나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아빠도 해냈으니 딸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빠와 딸, 그리고 투자라는 것


물론, 응원은 단순한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새 핸드폰, 새 옷,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크고 작은 지원들.



부모의 투자란


세상에서 가장 회수 불가능한 투자다.



수익률 0%.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투자.



내 DNA가 세상에 한 명 더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닐까?



그러니,


우리 둘 다 열심히 살아보자.



나도 아빠가 처음이듯,


너도 아빠의 딸로 사는 게 처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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