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라는 말은 내 사전에서 한동안 사라져 있었다.
아마 지난 5년간은 몸을 움직이는 대신, 일과 술,
그리고 약간의 무기력 같은 것들과 시간을 보내며 지냈던 것 같다.
그 이전의 나는 자전거를 오래 탔고, 검도 도장을 기웃거렸고, 그런대로 궁금한 것은 해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는 줄곧 일에만 매달렸다.
해외여행? 생각해보니 지난 5년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
얼마 전, 촬영 차 일본을 다녀온 게 그 시간 동안 처음 떠난 외국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마른 체형이었다.
허리가 24인치였고, 대학 시절에는 여동생과 청바지를 함께 입기도 했다.
그러다 해군에 입대했고, 무인도에 배치되었다.
그곳엔 운동장이 없었다. 대신 여름이면 바다가 전부였다.
바다수영을 배웠고, 그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였다.
매년 5월이면 부대에서는 수구대회가 열렸다.
수영을 못했던 나는 늘 불안했다. 대회에 처음 참가했을 때는 골키퍼를 맡았다.
문제는, 골대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헤엄쳐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결과는 8대 0. 처참했다.
그날 이후 선임하사는 수영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지만, 방법은 단순했다.
나를 바다에 밀어 넣는 것.
그렇게 바다에서 익힌 수영은,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가끔은 한강쯤은 건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건너본 적은 없다.
요즘은 성내동에 산다.
반려견과 산책을 하다 보면 러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뭘 저렇게 열심히 뛰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내 몸 상태를 떠올렸다.
별로라는 단어가 정확했다.
헬스장에 기부한 돈은 꽤 되는데, 운동은 안 하고, 저녁이면 약속이든 혼술이든 늘 술이 따라왔다.
몇 해 전, 아버지 수술 이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시던 시기가 있었다.
밤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대기하다, 아무 일 없이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 나면
마음이 놓여 술 한 잔 마시고 잠들곤 했다.
그런 날들이 몇 달 쌓이자, 몸무게는 6킬로그램이나 늘어 있었다.
지금 아버지는 건강하시고, 퇴촌에서 잘 지내신다.
하지만 그때의 술 습관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술을 마신 날은 일찍 잠들지만 새벽 다섯 시면 눈이 떠진다.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생각했다.
‘이 시간에 뭔가 다른 걸 해볼까?’
그래서 나는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1킬로미터도 못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무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주일이 지나자 5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몸이란 참 신기하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3주 후엔 10킬로미터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목표가 생기니 기분이 좀 다르다.
올해는 자격증 대신, 땀으로 만든 무언가를 가져보고 싶다.
아마도,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종류의 성취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