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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50대!

by 함수규

그날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마라톤 대회 신청 버튼을 눌렀다.

욱하는 마음이라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일을 저지르게 만든다.

신청하고 나서야 남은 시간이 고작 3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해,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버튼은 눌렸고, 결제도 끝났으며, 이메일로 접수 확인 메일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처음엔 5km로 신청할까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5km는 너무 초보 같았다.

그렇다고 하프는 무리였다. 결국 10km라는 애매하면서도 묘하게 그럴싸한 숫자를 선택했다.

무라도 썰겠다는 마음이었으니까.

내 몸은 50대의, 게다가 술에 찌든 중년의 몸이었다. 훈련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어색했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훨씬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최대한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자고.

아직 여름의 문턱에 있는 6월, 새벽 다섯 시는 어둡지 않았다. 눈을 비비고 나와, 걷기 시작했다.

러닝복까지 입고도 걷기만 하니 민망해서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숨은 거짓말처럼 금방 찼고,

거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짧았다. 한숨이 절로 났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500미터 정도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나름 진보였다.

아침마다 평화의 문 앞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그렇게 ‘조금씩’이 쌓여갔다. 3주차에는 10km 코스를 그려놓고 매일 1km씩 늘렸다. 5km 이후부터는 걷는 시간이 길었다. 그럴 땐 완주가 목표라는 생각으로 중심을 잡았다.

점점, 신기하게도 내 몸이 스스로를 증명해주기 시작했다. 거리는 늘었고, 시간은 줄었다.

대회 전 마지막 이틀은 달리지 않았다. 몸을 회복시키는 것도 훈련의 일부라고 믿었다.

마라톤 당일, 여의도는 사람으로 붐볐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열심히 달렸던 걸까.

나도 그들 중 하나로 섞여 출발선에 섰다.

내가 따라 붙은 페이스메이커는 20대 여자 두 명이었다. 속도도, 리듬도 딱 맞았다.

2km쯤 달렸을까, 한 명이 갑자기 멈췄다. 무리한 듯했다. 순간, 내 페이스도 흔들렸고,

종아리에 묘한 통증이 시작됐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걷기도 하고,

다시 달리기도 하며 5km 반환점을 지났다. 봉사자들이 외치는 “여기까지 왔잖아요!“라는 응원은 생각보다 위로가 됐다. 돌아가는 길은 더 짧게 느껴졌다.

7, 8km 지점에서는 의외로 숨도 덜 차고, 다리도 괜찮았다.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러너스 하이라는 건가.

모호하지만 분명한, 무언가였다. 9km 지점에서는 기록에 대한 욕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걷지 않으면 8분대, 달리면 7분대. 그래, 해보자. 그렇게 사람들을 하나둘씩 추월하며 마지막 1km를 달렸다.

처음 1km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기록은 1시간 13분. 남들 눈엔 대수롭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생애 첫 10km의 숫자였다.

어떤 기록은 숫자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매달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2시간 안에 끝난 이벤트였다. 그러나 마음속엔 길게 남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50대의 새로운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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