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겡끼데스까
어쩌다 보니, 나는 평생 외국어 공부를 해왔다.
특히 영어. 끝도 없는 긴 터널을 걷듯이, 학원만 몇 년을 다녔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엔 작년 가을부터는 일본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10년 전 중국어를 배우던 바로 그 학원에서 말이다.
이제 겨우 히라가나를 읽는 수준이지만,
지나가다 간판을 훑어보면 어렴풋이 뜻이 보이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아, 조금은 전진했구나 싶다.
왜 일본어인가? 지금까지는 언제나 기간과 목표가 정해진 공부만 해왔다.
시험을 보고, 점수를 따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 그러나 이번에는 그게 아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그냥 좋아하는 걸 공부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저 계속할 뿐이다.
고등학생 시절, 한국은 일본 문화가 철저히 닫혀 있었다.
일본 드라마나 음악을 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 멘즈 논노라는 일본 패션 잡지를 접했을 때,
내 눈앞이 환하게 열렸다. 세련된 스타일, 낯선 브랜드들,
아시아인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멋.
나는 그때부터 매달 용돈을 모아 수입 서적을 파는 서점에 가곤 했다.
명동, 대만 대사관 근처의 작은 가게들.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그때 알게 된 이름들. 소년대, 안전지대, 쿠도 시즈카, 체커스, 그리고 나카야마 미호. 히가로 겐지. 튜브. 구와타밴드. 서던 올스타즈 등등
그중 나카야마 미호는 단순한 아이돌이 아니었다.
가수였고, 배우였고, 그리고 나에게는 하나의 여신 같은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이와이순지감독의 "러브레터"에서 1인 2역을 소화했고,
나는 그 영화를 보고 홋카이도 오타루까지 여행을 갔다.
그녀가 남긴 여운을 따라, 눈 덮인 거리를 걸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세상에 없다.
얼마 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삶이란, 때때로 무심하고 가혹하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된 이름이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한동안 그녀의 죽음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와이프는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덕분에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와이프가 일본에 있던 시절, 나는 매달 일본을 찾았다. 비자는 쉬워졌고,
상대적으로 엔화는 저렴해서 부담이 적었다.
혼자서도 낯선 도시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작은 바에 앉아 조용히 술을 마셨다.
와이프가 살던 동네 근처. 아카바네라는 동네에는 야끼도리로 유명한 골목이 있었다.
양복을 입은 퇴근한 회사원들이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야끼도리와 함께 기울이는 곳.
나도 종종 그들 사이에 섞여 조용히 잔을 비웠다.
그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요식업을 준비하려고 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유명한 카페, 바,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기록하고, 관찰하고, 찾아다녔다
일본의 음식 문화에는 '진심'이 있다.
골목어귀에 작은 위스키바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바텐더가 토시를 끼고 얼음을 다듬는 모습에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기술이 이상의 어떤 태도가 있었다. 그것이 멋이라는 것을,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그런 기억들 때문일까.
가끔은, 일본에서 와이프와 위스키 바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도 아니라, 도쿄의 골목 한편에서.
바텐더의 손길처럼 시간을 천천히 보내는 그런 공간에서.
하지만 인생은 늘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째. 여전히 어렵다.
남들은 평생을 들여 베우고 사용하는 언어를 4개월 만에 평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성시경이 1년 만에 JLPT 1급을 땄다는 기사를 보면, 괜스레 현타가 온다.
역시 천재는 따로 있는 걸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늘 그랬듯, 그냥 계속할 것이다.
너무 잘하려 하지 않고, 조용히, 꾸준히.
그렇게, 오늘도 히라가나를 읽으며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