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올해 여름은 조용하다.
이상할 정도로, 너무 조용해서 조금 불안해질 정도로.
에어컨 소리만 웅웅거리는 사무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축축한 오후. 그렇게 시간이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타니 쇼헤이라는 선수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오타니 쇼헤이.
그 이름은 이미 여러 번 들어왔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 그의 이름 앞에선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말 그대로 만화 같은 인물이다.
투수와 타자, 두 개의 전혀 다른 포지션을 모두 소화하고, 그것도 각각 리그 정상의 실력으로.
작년엔 홈런왕에 월드시리즈 우승, MVP까지.
그러니까, 말 그대로 야구라는 장르의 클라이맥스를 혼자서 다 해먹는 느낌이다.
그리고 덤으로, 키는 190이 넘고, 얼굴도 제법 잘생겼다.
최근엔 일본 여자 배구 선수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했다.
어느 하나 빠질 게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인성이었다.
늘 웃고,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쓰레기가 보이면 줍고, 데드볼을 맞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
아무리 털어도 미담만 나온다는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드물다.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특히 늘 자신감과 자의식으로 무장한 미국 사회에서는, 그런 모습은 아마 문화 충격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를 보며 문득 ‘겸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자라면서 그 단어를 수없이 들었다.
겸손하라, 참아라, 드러내지 마라.
유교 문화는 우리 안에 자연스럽게 조용히 각인되어 있다.
물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줍는 건 그걸 하는 직업이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인생이 있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말이 맞고 틀리다기보단, 선택의 문제다.
며칠 전, 오타니가 고교 시절에 만든 ‘만다라트’라는 목표 도표를 보게 되었다.
아직은 체격도 여리던 10대의 소년이, 메이저리그를 향해 치밀하게 설계한 계획표였다.
그걸 들여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저 나이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계획을 세운다.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를 펴고 다짐을 적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흐지부지 잊어버린다.
뜨거운 커피가 미지근해지듯, 그렇게 식는다.
내가 요즘 그렇다.
일본어 학원, 마라톤.
더위 탓인가, 며칠째 마음이 무겁고 의욕이 없다.
오타니는 어떻게 계속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정확한 목표, 디테일한 계획, 그리고 지독할 정도의 반복.
그게 그의 원동력일 것이다.
그는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채용할 때, 1년 이상은 꾸준히 한곳에서 일한 사람을 신뢰한다.
그건 실력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다.
이 조용한 한 해는, 어쩌면 나에게 그런 정돈의 시간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너무 조용하면 존재감이 옅어진다.
그게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다.
이제는 다시 작은 목표를 꺼내어 다듬을 시간이라는 걸.
오타니처럼 만다라를 그릴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만의 방향은 필요하다.
그 방향이 어디든, 내 걸음만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