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는 늘 두통을 안고 산다.
집에는 약국보다 더 다양한 두통약이 구비되어 있다.
연애 시절부터 그랬다. 가끔 데이트 도중에도 두통이 찾아와, 우리는 잠시 카페에 앉아 시간을 죽이곤 했다.
반면 나는 평생 두통이 없었다.
가끔 술 마신 다음 날 머리가 띵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숙취였다.
머리라는 건 나한테 원래 그냥 조용히 기능하는 장기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상하게 두통이 생겼다.
원인을 짐작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 불안감? 두려움?
그런 건 없었다. 지금의 나는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기분도 잔잔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와이프는 예민한 편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책임이나 일에서 부담을 크게 느낀다.
보지 않아도 될 걸 보고, 듣지 않아도 될 걸 듣는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두통이 찾아왔다.
나는 그걸 ‘월요병’이라 불렀다. 금요일부터 멀쩡하던 사람이 일요일 밤만 되면 머리를 부여잡으니,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작년의 나는 왜 두통이 생겼을까.
예민해진 것도 아니고, 멘탈이 약해진 것도 아닌데.
결국 이유를 찾아냈다.
전세금 때문이었다.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액수는 억 단위였고, 내 통장에는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다른 세입자가 들어와야만 이전 세입자의 전세금을 반환할 수 있는 구조였다.
약속된 날 돈을 주지 못하면, 나는 하루아침에 ‘전세 사기꾼’이 된다.
집은 쉽게 나가지 않았다.
신축이라 동네 경쟁력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집을 구하는 사람은 늘 신중했다.
세대가 많다 보니 몇 달 동안 3~4집이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 과정을 보며, 나는 ‘이 집을 살 때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 와중에 원룸 한 채가 문제였다.
세입자가 집을 보여주길 꺼려했고, 집 상태도 엉망이었다.
결국 나는 돈을 급히 융통해 전세금을 돌려주고, 도배와 인테리어를 새로 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금방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
계약이 모두 마무리되자 두통도 사라졌다.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고, 술술 풀리는 일은 더더욱 없다는 걸, 나는 오십이 넘어서 또 한 번 배웠다.
동네 앞집, 옆집, 뒷집의 노부부 집주인들이 풍기는 묘한 포스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그건 연륜이었다.
올해는 다행히 대부분 연장 계약이 되었다.
내년에는 몇 건이 만료된다. 그래서일까, 요즘 다시 두통이 고개를 든다.
누가 달리기를 하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해서 열심히 뛰어봤다.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동안에만.
두통약은 이미 있다.
정확한 처방은 간단하다. 미리 전세금을 준비하는 것.
아직 6개월이 남았다. 불가능하진 않다.
그만큼 소비를 억제하면 된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사고 싶은 걸 다 사서, 이제 총량이 다한 걸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줄었다는 건 조금 서글픈 일이지만.
며칠 전, 뉴욕에 있는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이후, 두통은 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