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그곳에 올림픽공원이 있다.
84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만들어진, 제법 큰 규모의 인공공원이다.
서울 안에서 이 정도 크기의 공원은 흔치 않다. 굳이 비유하자면 뉴욕의 센트럴 파크쯤 될까.
나는 이 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공원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역사를 나름 잘 알고 있다.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그저 조용히 “네, 꽤 오래 지켜봤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훈련장은 늘 이 공원이다.
런닝을 하다 보면 보통 같은 코스를 반복하기 마련인데, 올림픽공원은 좀 다르다.
워낙 넓기도 하고, 미묘하게 변주되는 풍경들이 있어서,
매번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건 꽤 큰 즐거움이다.
봄과 가을, 날씨가 좋은 날이면 서울 전역에서, 혹은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넓은 잔디광장에 돗자리나 캠핑의자를 펴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
외국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내 집 근처에서 매일같이 펼쳐진다.
서울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꽤 오랜 시간 이 공원을 대표하는 행사였고,
지금도 여전히 공연장은 아이돌부터 트로트 가수까지 1년 내내 다양한 무대를 채운다.
그렇다고 내가 공연을 자주 보러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공기가 내 일상과 겹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도시에 사는 재미를 느낀다.
사실 예전에는 이곳을 자주 찾지 않았다.
하지만 이 동네로 다시 이사 온 뒤부터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공원에 발을 들인다.
계절의 변화를, 나무와 잔디의 색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건 꽤 호사스러운 일이다.
등록해 놓고 반년 넘게 나가지 않는 헬스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가끔 장모님이나 처가 식구들이 놀러 오면, 우리는 캠핑의자를 들고 공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 근처에서 가성비 좋은 저녁을 먹는다.
그럴 때면 문득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부동산 하면 늘 강남을 말한다.
하지만 삶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지금 사는 이 동네가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만 해도 이곳은 평범한 사람들의 동네였다.
주인집이냐 세입자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보이지 않는 빈부의 경계가 생겼고,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사는 일이 평생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버블 시대의 일본처럼, 한국도 어쩐지 거품이 낀 것 같다는 생각을
집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왜 갑자기 부동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어릴 적 이곳에서 터를 잡으신 부모님의 결정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들도 낮설고 척박한 동네에 와서 힘들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인생을 희생하셨을 것이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지금 내가 이 동네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 조용한 고마움을 가끔씩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