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드디어 엘지 트윈스가 리그 우승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1990년 우승, 1994년 우승, 그리고 2023년.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또 한 번 왕좌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런 광경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팀은 나와 닮아 있었다.
잘 나가다가도 미끄러지고,
모든 걸 놓은 듯하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꼭 내 인생 같았다.
내가 아는 잠실은 언제나 응원 소리의 도시였다.
여름밤, 야구장 조명이 켜지고,
응원가가 한강 쪽으로 흘러가던 시절.
경기가 끝나면 종합운동장 역 앞 공터엔
언제나 술판이 벌어졌다.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사람들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마셨다.
그게 서울의 여름에서 가을로가는 잠실의 모습 이었다.
서른 살 즈음, 나는 자주 야구장에 갔다.
동생이 구단에서 일하고 있어서,
언제나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엘지는 나에게 단순한 팀이 아니었다.
1980년대 프로야구 창단후 MBC 청룡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진 인연이었다.
야구팀에는 묘한 색깔이 있다.
훈련 방식이나 전통, 아니면 그 팀을 둘러싼 공기 같은 것들.
기아 타이거즈는 광주답게 끈질기고,
삼성 라이온즈는 늘 일등만 바라보며,
롯데는 불안하지만 정이 넘친다.
엘지는 좀 달랐다.
어딘가 느긋하고, 조금은 뺀질거리지만,
그 속엔 묘한 세련됨이 있었다.
언제나 여자 팬이 많은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의 시절.
일본식 훈련, 철저한 데이터 야구,
그해 엘지는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엘지투수의 상징이던 야생마 이상훈이 홈런 두 방에 무너졌다.
당시 추운가을 밤 야구장에 있던 나는 새벽까지
아쉬움을 달래며 술을 마시던 기억이 난다.
그건 단지 야구의 패배가 아니라,
청춘의 한 장면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2000년대, 팀은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6위, 7위, 8위.
빛이 보이지 않던 시간들.
마치 내 인생의 어떤 시절과도 닮아 있었다.
누구나 그런 어둠을 한 번쯤은 통과해야 하는 법이다.
미국에서 살던 몇 해 동안은
야구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
텔레비전에서 엘지 경기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낯설고도 반가운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팀은 여전히 존재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을 응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엘지는 다시 우승했다.
TV 화면 속에서 선수들이 서로 껴안고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29년 만의 우승이라 했다.
돌아가신 구본무 회장의 위스키와 시계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다.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가
야구보다 더 가슴을 울렸다.
그날 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엘지, 엘지, 트윈스.”
그 단순한 구호 속에
내 30년의 인생도 어느 정도 묻혀 있었다.
야구란 결국 기다림의 예술이다.
그리고 인생이란,
그 기다림을 견디는 기술이다.
어쩌면
나는 엘지를 응원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 자신을 응원해온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