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강의 생태계가 살아난다’는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보았다.
그 프로그램에서 잠실이 원래는 섬이었고, 매립을 통해 신도시 형태로 개발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매울 흙이 부족해 남겨둔 곳이 지금의 석촌호수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어린 시절의 회색빛 잠실을 떠올렸다.
1980~90년대의 잠실은 서울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반듯한 도로,
그리고 ‘모범적인 삶’을 꿈꾸던 수많은 가족들이 모여들던 곳.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80년초 막 서울로 이사 왔을 때,
주택이 빽빽하던 동네에서 살던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이 너무 반듯하고, 너무 조용해서 낯설었다.
집마다 모양이 같고, 창문마다 커튼 색깔까지 닮아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마저 서로 닮아가는 느낌이었다.
아파트는 편리하지만, 인간관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따뜻한 온기.
하지만 그 온도는 가끔 사람을 외롭게 한다.
이웃의 이름을 몰라도 불편하지 않고,
벽 하나 사이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일상이 이어진다.
가깝지만 멀고, 연결되어 있지만 단절된 느낌이랄까..
잠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파트가 거의 없었던
오금동이나 방이동에서 시작한 서울 생활,
사람 사이의 관계는 조금 더 투박했지만 따뜻했다.
문을 두드리면 바로 대답이 돌아왔고,
아이들이 골목길을 뛰어다니면
어느 집에서든 “조심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절의 온도는 약간 들쭉날쭉했지만, 살아 있었다.
지난 아파트에서의 18년의 삶은
나에게 ‘균일한 온도’라는 개념을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비슷한 환경, 비슷한 생각,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 속에서
큰 다툼도, 큰 감동도 없이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그 평온함 속엔 ‘인간적인 온기’가 조금은 부족했던 것 같다.
도시는 결국 사람의 체온으로 완성된다.
건물의 높이나 거리의 정돈됨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이 도시의 진짜 온도를 만든다.
그 온도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쓴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고,
동네 카페의 직원 이름을 외우는 일 같은,
아주 사소한 노력으로.
도시의 삶은 여전히 빠르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온도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 도시 역시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