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끝났다.
코리안시리즈도, 월드시리즈도 다 지나갔다.
밤마다 TV 앞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보던 경기가 사라지자,
도시는 잠시 조용해졌다.
볼거리가 없어진 요즘, 나는 넷플릭스에서 두 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한편은 슬프고, 한편은 묘하게 설렌다.
그중에서도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이상하게 이 드라마는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아마도, 내 또래의 이야기라서일 것이다.
슬프고, 낯설지 않다.
연출도 연기도 모두 현실 같다.
마치 오래된 친구의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다.
나는 대기업에 다닌 적은 없다.
하지만 나름 잘나가는 이커머스의 큰 회사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그 시절, 나는 매일 같은 곳을 출근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공간에서 일을 했었다
어쩌면 그게 ‘직장 생활’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리듬 속에서, 조금씩 닳아가는 것.
다행이 나는 운이 좋았다. 권고사직도, 한직 이동도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겪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웃던 사람이,
그 다음 주엔 빈 자리에 놓인 머그컵만 남았다.
그때의 나는 이해할수가 없었다.
왜 본인만 모르는 걸까?
주변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정작 당사자만 몰랐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남았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들은 몰랐던 게 아니라, 알고도 말하지 않았던 거다.
아니면, 어쩌면 대안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회사는 결국 서로가 필요할 때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공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식는다.
그건 이별의 예고이자, 시스템의 리듬이다.
나는 공채 출신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은 늘 약간의 거리감을 가진다.
그건 외로움이면서 동시에 자유였다.
그래서 나는 미리 준비를 했다.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일을 생각하고,
‘퇴사’라는 단어를 낭만적으로 발음하려 애썼다.
그때 시작한 자격증 공부가
이제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나는 직원이 아닌, 사장의 입장에서 김부장을 본다.
그의 우유부단함이 답답하다.
왜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30년을 바친 회사를 떠난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건 삶의 일부를 도려내는 일이다.
그가 서 있는 그 자리는,
어쩌면 나도 언젠가 지나온 자리일지도 모른다.
아직 드라마는 4편뿐이다.
결국 주인공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드라마는 언제나 그렇다.
하지만 현실의 김부장은,
아마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는 잠시 멈춰 서 있을 테고,
어디론가 흘러가듯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나는 요즘, 인생의 2막을 생각한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의 설렘과 긴장,
그 묘한 리듬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2막은 단지 1막의 재방송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오늘 밤,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누군가는 퇴근을 하지만,
누군가는 지금 막 새로운 출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