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이상하게도 손이 빨랐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이번엔 유난히 서둘렀다.
10월 말, 할로윈 장식이 거리에 사라지자마자 나는 박스를 꺼냈다.
빨강과 초록의 끈, 금빛 전구, 그리고 낡은 오너먼트들.
마치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내 손은 스스로 움직였다.
처음엔 그저 거실 구석에 트리 하나 정도면 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범위가 커졌다.
현관, 주차장, 엘리베이터 입구, 그리고 건물 외벽까지.
전선은 점점 길어졌고, 전구는 점점 많아졌다.
이사를 한 뒤부터 그런 일이 당연해졌다.
마치 공간이 나를 부추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릴 적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았다.
한 달 벌어 한 달을 살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매년 겨울이면 뒷산으로 올라가 작은 나무를 베어 오셨다.
그걸 방 한가운데 연탄통에 세우면,
나와 동생은 문방구에서 산 색종이와 반짝이를 별 모양으로 잘라 오려 붙였다.
테이프는 자주 떨어졌고, 별은 금세 구겨졌다.
그래도 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지면 집 안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라디오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왔고,
어머니는 웃으셨고, 우리는 아버지가 사다주신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아버지는 나무 아래에서 약주를 한 모금 마시며 불빛을 바라보셨다.
그 불빛이 마치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하는 주문 같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지 않으면 겨울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고 느낀다.
전구를 다는 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안의 어떤 기억을 붙잡는 의식에 가깝다.
이번엔 조금 과하다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멈출 수 없었다. 집착이라도 하는거 같다.
밤마다 불을 켜고, 전선을 정리하고, 트리의 각도를 조정했다.
그러다 문득, 불빛이 벽에 비친 나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건 마치 오래전 아버지가 트리를 바라보던 모습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장식이 아니라 어릴적 행복했던 기억을 불러오는 의식이라는 걸.
올해도 어김없이 트리의 불빛은 반짝인다.
조용한 겨울밤, 나는 트리 장식을 보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 향 속에서 오래전 크리스마스의 공기가 느껴진다.
어릴 적의 따뜻한 방, 그리고 아버지의 숨결.
전구는 깜박이고, 나는 그 빛 속에서 잠시 멈춰 선다.
“올해도, 어쩐지 조금 더 환하게 꾸며야 할 것 같아.”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누군가 내 옆에서 듣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