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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에 집착하는 50대

by 함수규

올해는 이상하게도 손이 빨랐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이번엔 유난히 서둘렀다.

10월 말, 할로윈 장식이 거리에 사라지자마자 나는 박스를 꺼냈다.

빨강과 초록의 끈, 금빛 전구, 그리고 낡은 오너먼트들.

마치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내 손은 스스로 움직였다.

처음엔 그저 거실 구석에 트리 하나 정도면 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범위가 커졌다.

현관, 주차장, 엘리베이터 입구, 그리고 건물 외벽까지.

전선은 점점 길어졌고, 전구는 점점 많아졌다.

이사를 한 뒤부터 그런 일이 당연해졌다.

마치 공간이 나를 부추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릴 적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았다.

한 달 벌어 한 달을 살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매년 겨울이면 뒷산으로 올라가 작은 나무를 베어 오셨다.

그걸 방 한가운데 연탄통에 세우면,

나와 동생은 문방구에서 산 색종이와 반짝이를 별 모양으로 잘라 오려 붙였다.

테이프는 자주 떨어졌고, 별은 금세 구겨졌다.

그래도 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지면 집 안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라디오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왔고,

어머니는 웃으셨고, 우리는 아버지가 사다주신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아버지는 나무 아래에서 약주를 한 모금 마시며 불빛을 바라보셨다.

그 불빛이 마치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하는 주문 같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지 않으면 겨울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고 느낀다.

전구를 다는 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안의 어떤 기억을 붙잡는 의식에 가깝다.

이번엔 조금 과하다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멈출 수 없었다. 집착이라도 하는거 같다.

밤마다 불을 켜고, 전선을 정리하고, 트리의 각도를 조정했다.

그러다 문득, 불빛이 벽에 비친 나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건 마치 오래전 아버지가 트리를 바라보던 모습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장식이 아니라 어릴적 행복했던 기억을 불러오는 의식이라는 걸.

올해도 어김없이 트리의 불빛은 반짝인다.

조용한 겨울밤, 나는 트리 장식을 보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 향 속에서 오래전 크리스마스의 공기가 느껴진다.

어릴 적의 따뜻한 방, 그리고 아버지의 숨결.

전구는 깜박이고, 나는 그 빛 속에서 잠시 멈춰 선다.

“올해도, 어쩐지 조금 더 환하게 꾸며야 할 것 같아.”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누군가 내 옆에서 듣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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