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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포니2

by 함수규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서 ‘택시 기사’라는 직업은 꽤 멋져 보였다.

고급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일도 아니었다.

국민학교 단짝 친구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회사택시를 몰다가, 결국 목돈을 모아 개인택시를 샀다.

그 노란색 포니2.

지금 생각해보면 색도 모양도 좀 투박했지만, 이상하리만큼 동네 아이들에게는 작은 자유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서 차를 가진 집은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비나 눈이 몰아치던 겨울 등굣길,

학교 정문 앞에서 친구가 따뜻한 차 안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나는 잠깐 그 차가 나를 데려다주고 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수록 그 상상은 더 선명해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 친구네는 번듯한 2층 양옥집으로 이사를 갔다.

단지 집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 변화가 어린 나에게는 어떤 수직상승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때의 나에게 개인택시는 안정, 풍요, 그리고 묘한 부러움이 전부 뒤섞인 직업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낡은 포니2처럼 느린 속도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언젠가부터 택시라는 직업은 선호 순위의 끝자락으로 밀려났다.

왠만한 집에 차가 두 대씩 있고, 지하철은 시간이면 시간, 거리면 거리

모두 정확하게 연결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무언가를 위해 굳이 택시를 탈 필요가 없는 세상.

마치 더 이상 오디오 CD가 필요 없어진 것처럼.

그래도 정말 필요한 순간 소중한 발이 되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내는 이유는,

얼마 전 내가 택시자격면허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버스 운전 자격증 시험까지 볼 계획이다.

연달아 시험을 보면 뇌가 덜 피곤하겠지, 하는 단순한 계산도 있었고

살면서 쓰게 될지, 아니면 영영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어딘가 애매한 기대로부터 비롯된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그 도전 과정이 내 삶에 작은 긴장과 묘한 성취감을 가져다줬다는 사실이다.

마치 오래 잠들어 있던 근육이 다시 깨어나는 듯한 느낌.

정확히 어디에 쓰일지 모르지만, 분명히 어딘가엔 쓰일 것 같은

그런 종류의 기분. 어려운 국가고시가 아닌 적당한 긴장감

합격하면 느끼는 적당한 성취감..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바로 지금 이 방향이 맞는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해보고 싶은 일.

이번 도전이 나에게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포니2는 아니지만, 언젠가 어떤 길 위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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