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 신 민사 콰란티아의 방(Sala della Quarantia Civil Nuova)
콰란티아(Quarantia)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사법기관으로 40을 뜻하는 콰란타(quaranta)에서 유래되었으며, 구성원 수에 의해 40인 위원회(Consiglio dei Quaranta)라 부르기도 한다.
13~14세기에 콰란티아는 하나의 법원으로서 형사, 민사, 재정 등을 모두 처리했다. 그러다가 1441년에 사법제도를 개편하면서 기존의 콰란티아를 형사 법원(Quarantia Criminale)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민사 법원(Quarantia Civil)이 추가되었다.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을 분리한 것이다. 그후에 베네치아에서 상업 분쟁인 무역 계약, 보험, 선박, 채무 등의 민사 사건이 많아지면서 민사 법원을 하나 더 만들었다. 1491년의 개혁으로 기존의 민사 법원을 구 민사 법원(Quarantia Civil Vecchia)이라 하고 새롭게 만든 민사 법원을 새 민사 법원(Quarantia Civil Nuova)이라 불렀다.
베네치아 공화국 초기에 만들어진 콰란티아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국력이 성장하고 대외적인 영향력이 커지면서 형사 법원, 구 민사 법원, 신 민사 법원으로 분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궁전 안에도 각각의 재판을 담당하는 세 개의 새로운 법정이 생겼고 그곳에서 죄인들의 재판이 이루어졌다.
신 민사 콰란티아의 방은 대평의회의 방과 선거 개표의 방 사이에 위치한 40인 위원회가 재판하는 신 민사 법원의 방이다.
방 정면에 있는 그림은 중앙의 금박 패널 안에 베네치아 수호 성모로 여겨진 니코페이아 성모가 있고 양쪽에 신앙과 종교를 의인화한 그림인 니코페이아 성모와 신앙, 종교의 알레고리(La Fede e la Religione proteggono la Madonna Nicopeia)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양쪽 벽에는 정면으로 보았을 때 왼쪽 벽에 도나토 브라가딘(Donato Bragadin)이 1459년에 그린 산 마르코의 사자 그림이 있고, 오른쪽에는 야코벨로 델 피오레(Jacobello del Fiore)가 1415년에 그린 산 마르코의 사자 그림이 걸려 있다.
이런 그림들이 주는 의미는 뭘까? 우리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 성모인 니코페이아가 지켜보는 곳에 재판을 하고, 산 마르코의 사자라는 국가 권위 아래에서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법의 심판이 단순히 개인적인 결정이 아니라 성모(니코페이아)와 국가(사자)와 법정(콰란티아)이라는 삼위일체의 정당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상징성인지도 모른다.
# 선거 개표의 방(Sala dello Scrutinio)
신 민사 콰란티아의 방을 지나 선거 개표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크루티니오의 방은 선거 개표의 방 혹은 선거 검표의 방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대평의회에서 선거를 치른 후 그 투표 용지를 가져와서 결과를 공정하게 집계하고 검표하는 일을 이곳에서 했다. 따라서 여러 이름들 중에서 이후부터는 선거 개표의 방이라 부르겠다.
선거 개표의 방은 15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원래는 페트라르카(Petrarch)와 베사리온(Bessarione)이 공화국에 남긴 귀중한 필사본들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마련된 공간이었다. 특히 1468년에 추기경 베사리온이 남긴 방대한 양의 고대 그리스어 필사본과 로마의 라틴어 필사본 문헌들이 이 방을 채우자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화국 정부는 독립된 도서관 건설을 계획하게 되었고 야코포 산소비노의 설계로 1537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588년경에 완공한 것이 두칼레 궁전 건너편에 있는 마르치아나 국립 도서관이었다.
이 방은 16세기 초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귀족 수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회의 공간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던 대평의회의 방도 마찬가지였다. 1532년부터 대평의회의 방에서 치루어진 선거 투표를 개표하는 장소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스크루티니오(Scrutinio)라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처음에는 방안에 책들이 있는 상태에서 개표와 검표를 진행했으며 1560년대에 들어서면서 투표 업무가 빈번해져 공간이 협소해지자 도서들을 상자에 담아두거나 다른 곳에 임시로 쌓아두었다. 장서들로 채워졌던 방은 책들의 창고 신세로 전락했고 방의 주된 임무는 선거 개표의 방이 되어버렸다.
1577년의 대화재로 선거 개표의 방이 일부 소실되자 이후에 방을 전면적으로 재건하면서 본격적인 선거 개표의 방으로 변했다. 방안에 있던 귀중한 필사본들은 그 이전에 일부는 다른 곳으로 옮겼고 또 방안에 남아 있던 장서들도 화재 당시 신속한 대피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 무사할 수 있었다.
이 방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안드레아 비첸티노(Andrea Vicentino)가 그린 레판토 해전(Battaglia di Lepanto)과 모레아 전쟁(Guerra di Morea)의 승리를 기념하는 모로시니 개선문(l'Arco Morosini)이다.
ㅣ안드레아 비첸티노(Andrea Vicentino)의 레판토 해전(Battaglia di Lepanto)ㅣ
레판토 해전은 1571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포함된 신성동맹과 오스만 제국 간에 그리스 서부의 레판토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해상 전투다. 이 해전에서 신성동맹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크게 승리함으로써 막강한 해군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베네치아의 국가적 위상이 한층 더 높아졌다. 아무튼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 전쟁의 승리를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중의 하나로 여기고 역사화로 기록하였으며 두칼레 궁전을 비롯한 여러 곳에 레판토 해전의 그림이 남아 있다.
ㅣ모레아 전쟁(Guerra di Morea)의 승리를 기념하는 모로시니 개선문(L'arco trionfale di Morosini)ㅣ
모레아 전쟁은 1684년부터 1699년까지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이 전쟁 역시 당시 유럽 대부분이 참가한 신성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이었다. 베네치아는 오스만 제국에게 빼앗긴 옛 식민지들을 되찾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해상 전투에 나섰다.
이때 베네치아 함대를 이끈 장군은 프란체스코 모로시니(Francesco Morosini, 1619–1694)로 1684년부터 1688년까지 해상 전투를 벌이면서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점령하였다. 베네치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많은 영토를 획득하였고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Pace di Karlowitz)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1715년에 오스만 제국이 다시 침략하면서 베네치아는 모레아 지역의 많은 땅들을 거의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어쩌면 이 전쟁은 베네치아 군사력의 마지막 전성기였는지도 모른다.
# 가죽 벽 장식의 방(Sala dei Cuoi)
살라 데이 쿠오이는 선거 개표의 방에서 구 민사 콰란티아의 방(Sala della Quarantia Civil Vecchia)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작은 방이다. 벽은 일반적인 벽지를 바른 것이 아니라 금박을 입히고 정교한 무늬를 찍어낸 가죽으로 장식된 쿠오리 도로(Cuoridoro) 기법을 사용했다. 따라서 벽을 보면 매우 사치스럽고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방에는 여러 점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ㅣ퀸텐 마세이스(Quentin Metsys)의 조롱당하는 그리스도(Cristo deriso)ㅣ
이 그림은 라틴어로 에케 호모(Ecce Homo)라 부르기도 한다. 그 의미는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19장 5절에 나오는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로 빌라도 총독이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은 채 매질당한 예수님을 군중 앞에 세우며 한 말이다.
화가 퀸텐 마세이스가 1525년경에 그린 그림으로 그는 벨기에 루뱅 출신의 플랑드르 화가로 네덜란드어 발음에 따라 마세이스라 부른다.
그림 중앙에 있는 예수는 로마군에 체포된 후 고문을 받아 야위고 고통받은 모습이며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다. 예수 오른쪽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본디오 빌라도이며, 왼쪽에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얼굴의 남자가 손을 묶는 밧줄을 쥐고 있다. 이런 모습은 중세와 그네상스 미술에서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ㅣ빈첸초 카테나(Vincenzo Catena)의 산 마르코, 세례 요한, 그리고 도제 레오나르도 로레단과 함께 보좌에 앉은 성모자(Madonna con il Bambino in trono tra San Marco, San Giovanni Battista e il doge Leonardo Loredan)ㅣ
베네치아 르네상스 화가 빈첸초 카테나가 1505–1507년경에 도제 레오나르도 로레단의 의뢰로 그린 그림이다.
성모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은 베네치아 공화국 제75대 도제 레오나르도 로레단(Leonardo Loredan, 1436~1521)이다. 산 마르코가 도제를 성모에게 소개하고 있으며 세례자 요한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다. 르네상스 그림에서 이런 형식은 종교적인 헌신과 베네치아의 정치적 권위가 결합된 전형적인 모습으로 성스러운 대화(Sacra Conversazione)라 부르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로레단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가장 강력했던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그가 무릎을 꿇고 성모 앞에 경배드리는 모습은 공화국의 번영과 안녕을 성모께 의탁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ㅣ보카초 보카치노(Boccaccio Boccaccino)의 성모와 아기 예수(Madonna con Bambino)ㅣ
화가 보카치노는 이탈리아 크레모나(Cremona) 출신의 화가로 초기에는 페라라 회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며 조반니 벨리니와 조르조네의 부드러운 색채와 명암법을 익혔다. 크레모나 대성당의 프레스코화 연작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크레모나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다.
성모와 아기 예수는 1504–1506년 사이에 제작한 종교화로 르네상스 미술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부드럽고 따뜻한 베네치아식 색채와 차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의 성모 모습이 인상적이다.
ㅣ히에로니무스 보스(Jheronimus Bosch)의 추종자가 그린 묵시록적 환상(Visione apocalittica)ㅣ
이 그림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독창적인 화풍에 깊은 영향을 받은 이름 모를 추종자에 의해 제작되었다. 보스의 화풍은 지옥의 풍경, 기괴한 괴물, 인간의 타락을 묘사한 것으로 묵시록적 환상 역시 초현실적이고 기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묵시록적 환상은 성경의 요한계시록이나 중세의 내세관을 바탕으로 한 심판과 파멸의 장면을 담고 있다. 배경으로 타오르는 불꽃과 자욱한 연기, 어두운 하늘 등이 세상의 종말을 시각화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절대 명제 앞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누구도 나의 죽음을 대신해 줄 수 없다고 했을 때 진시황처럼 죽음을 회피하기 위한 불로장생을 갈망하며 불로초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종교 속에서 구원을 통해 영원한 생으로 이어지는 내세적인 부활을 믿을 것인가?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죽음을 거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과정의 현실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 이후의 내세의 영적인 존재 못지 않게 현세를 살아가는 본질적인 삶의 인식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내가 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말을 외치도록 한 것이다. 며칠 전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이란을 대규모 공중 폭격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승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메멘토 모리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ce)는 그의 서정시집 송가(頌歌, Odes)에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 했다. 송가 1권 11편에 나오는 말로 '오늘을 붙잡아라'는 뜻이다. 더러는 '현재를 즐겨라'는 말로 많이 사용한다. 카르페 디엠은 이어지는 그 뒤의 글이 중요하다. 카르페 디엠, 콰암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는 '오늘을 붙잡아라, 내일은 가능한 한 믿지 말라.'는 뜻이다. 내일에 기대어 미루지 말고 오늘에 충실하며 살아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길게 보면 인생은 짧고 죽음은 가깝지만 그렇다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끝임없이 흐른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지만 인생의 낙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런 절제된 삶만을 강조할 수 있는가?
# 법률 감독관의 방(Sala del Magistrato alle Leggi)
베네치아 공화국의 법률 감독 기구로 법률의 적용, 해석, 행정 절차를 감독하는 곳이다. 이 방은 1553년에 신설된 산 마르코와 리알토 사무소의 법과 명령의 보존 및 집행관(Conservatori ed esecutori delle leggi e ordini degli uffici di San Marco e di Rialto)이라는 사법 기구로 시작했다.
세 명의 귀족 출신 위원들로 구성된 이들은 변호사 업무를 규제하는 법규를 집행하고, 도시의 주요 상업 중심지인 산 마르코와 리알토 지역의 행정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맡았다. 현재는 그림 갤러리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ㅣ필리포 자니베르티(Filippo Zaniberti)의 도제 조반니 1세 코르나로의 연회(Banchetto di stato del Doge Giovanni Corner)ㅣ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96대 도제였던 조반니 1세 코르나로(재위 1625~1629)가 두칼레 궁전에서 열린 고위 관료들과의 공식 연회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자니베르티는 연회장의 장식이나 식탁 위의 정교한 은식기와 유리 공예품 그리고 인물들의 복식 등을 매우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면 앞쪽에 화려한 복장을 한 하인들이 음식을 나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담겨 있어서 관료들의 정적인 연회의 분위기와 대비되는 생동감을 안겨 준다. 17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의례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화라 하겠다.
ㅣ잠바티스타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의 베네치아에 바다의 보물을 바치는 넵투누스(Nettuno offre a Venezia i doni del mare)ㅣ
그림을 보았을 때 오른쪽에 왕관을 쓰고 화려한 황금빛 드레스와 북방족제비 털로 만든 흰 모피의 에르민(Ermine) 망토를 두른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을 의인화한 모습이다. 왼쪽에는 바다의 신 넵튜누스(포세이돈)이며 그의 상징인 삼지창이 있다. 넵튜누스는 풍요의 뿔을 의미하는 소라껍질 속에 든 금화, 진주, 산호 등 바다의 귀한 보물들을 베네치아의 발치에 쏟아붓고 있다. 잠바티스타 티에폴로가 이 그림을 제작한 것은 1756~1758년경으로 이 시기는 이미 베네치아가 황혼기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위엄과 해상 통제권을 상징하려는 화가의 마음은 무엇일까?
한 국가의 성장과 쇠퇴는 외면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설령 몸부림을 친다고 한들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다. 18세기 중반의 베네치아는 해상 무역권이 약화되고 국력이 실질적으로 쇠퇴하던 시기였다. 과거의 전성기에 누렸던 옛 영광은 그저 심리적인 위안에 불과했다. 왜 그럴까? 어떤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력이 기울어가는 나라의 쇠락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메꿔지지 않으니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래서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 감옥으로 가는 통로
법률 감독관의 방에는 감옥으로 가는 좁은 통로가 있다. 방의 작은 문으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을 통하면 복도가 나오고 운하를 건너는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를 통해서 신 감옥(Prigioni Nuove)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