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베네치아의 심장, 산 마르코 광장에서
2) 피아제타(Piazzetta)
시계탑에서 정면으로 석호가 보이는 쪽은 소광장인 피아제타다.
피아제타는 바다로 나아가고 해상권을 장악하고자 했던 베네치아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렇지 않은가? 설령 바다와 마주하는 광장이 있다 하더라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중의 하나가 산 마르코 광장의 피아제타다.
피아제타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은 동쪽에 있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과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두 개의 산 마르코와 산 토다로 기둥(Columns of San Marco and San Todaro) 그리고 서쪽에 있는 마르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Marciana)이다. 두 건축물은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다.
ㅣ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ㅣ
글을 쓰면서 무척 고민스러웠던 것은 도제의 궁전(Doge's Palace)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의 표현 문제였다. 두 용어는 서로 혼재되어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둘 다 틀린 용어도 아니었다. 맞는 말인데 왜 둘을 구분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도제의 궁전은 영미식 표현이고 두칼레 궁전은 이탈리아식 표현이다.
다른 또 하나의 고민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를 칭하는 도제였다. 더러는 총독이라고 말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도제(Doge)의 어원은 라틴어 둑스(dux, 지도자)에서 파생되어 이탈리아어로 두카(Duca, 지도자), 영어로 듀크(duke, 공작)가 되었으며 베네치아에서는 도제(Doge, 최고 지도자)라 불렀다. 그러므로 도제는 엄밀히 말하면 영어의 총독(Governor)보다는 공작(duke)에 가깝다. 그 이유는 초기의 베네치아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임명된 공작령이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결국 시대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제와 총독의 차이는 도제는 간접선거 방식이기는 하지만 선거에 의해 종신 지도자로 뽑힌 선출직이고 총독은 왕이나 황제에 의해 임명되어 영지를 다스리는 위임직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의 글에서 베네치아의 최고 지도자는 도제(Doge)라 표현하고 도제의 궁전은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으로 사용할 것이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 도제가 거주하면서 집무하는 곳이며, 공화국 정부의 여러 정치 조직을 구성하는 기구들과 소속 의원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14~15세기에 완공된 건물은 베네치아 고딕 양식으로 베네치아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1층은 개방된 아케이드가 연속적으로 배열되고 2층은 아치형의 회랑이 역시 개방된 모습을 하고 있다. 1, 2층의 가벼움에 비해 3, 4층은 듬성듬성한 창문을 제외한 전체적인 벽체 구조가 투박하고 육중해 보인다. 그 과중한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두칼레 궁전은 육지의 광장에서 볼 때보다 석호의 바다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ㅣ산 마르코와 산 토다로 기둥(Columns of San Marco and San Todaro)ㅣ
이 기념물은 베네치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지만 실은 약탈의 산물이다.
역사학과 법학을 전공했던 안드레아 단돌로는 두 권의 베네치아 역사서를 남겼다. 하나는『Chronica per extensum descripta』이고 다른 하나는『Chronica brevis』다. 어색하지만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전자는『상세하게 서술한 확장된 연대기』이며, 후자는 『짧은 연대기』라 할 수 있겠다. 안드레아 단돌로(Andrea Dandolo, 1306~1354)는 베네치아 공화국 제54대 도제를 지냈던 인물이다.
연대기에 따르면 이 기둥은 1125년(또는 1127년)에 도제 도메니코 미키엘(Domenico Michiel)이 레바논의 항구 티레(Tyre)를 공격하여 도시를 점령하고 전리품으로 약탈해서 베네치아로 가져왔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가능했을까?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성지 탈환을 마쳤다고 생각한 십자군은 유럽으로 돌아갔지만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군대는 예루살렘에 남아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고 통치를 했다. 그후 예루살렘 왕국은 중동의 해안 도시들을 장악하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베네치아 함대는 1122년 출항하여 1124년 티레를 공격하여 점령했던 것이다. 베네치아는 그 댓가로 티레 영토의 1/3을 할양받았으며 기둥을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일부 역사학자 중에는 두 기둥을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점령되었을 때 그곳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하지만 소수설에 불과하다.
피아제타에 두 기둥이 세워진 것은 12세기 중반으로 건축가 니콜로 바라티에리(Nicolò Barattieri)가 했다.
그는 1180년에 산 마르코 종탑을 200피트(약 61미터)나 높이 올렸으며 1181년에는 대운하에 기존에 있던 배다리를 기둥을 세워서 만든 나무 다리 폰테 델라 모네타(Ponte della Moneta)를 건설했다. 이것은 리알토 다리의 전신이기도 하다.
동쪽에 있는 기둥은 산 마르코 기둥(Colonne di San Marco)이다.
기둥의 꼭대기에는 날개 달린 사자상이 있으며 성인 마르코를 상징한다.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현재 수호성인인 마가 요한으로 마가복음을 쓴 사람이다. 산 마르코가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된 것은 828년에 그의 유해가 베네치아에 도착하면서부터다. 말이 좋아 유해가 온 것이지 사실은 유물을 탈취한 것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제11대 도제 주스티니아노 파르테치파치오는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과 공화국의 종교적 신성함을 소유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 부오노 다 말라모코(Buono da Malamocco)와 루스티코 다 토르첼로(Rustico da Torcello)에게 산 마르코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가져오라는 밀명을 내렸다.
두 상인은 산 니콜라(San Nicola)호를 타고 827년 11월 베네치아를 떠나 산 마르코 유해가 안치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바우칼리스(Baucalis) 지역에 있는 교회로 갔다. 교회의 신부들에게 뇌물을 주고 산 마르코 유해를 인수한 후 항구의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성인의 유물을 넣은 관 안에 채소와 돼지고기를 덮었다. 그 이유는 무슬림의 율법과 교리에 돼지고기를 불결하고 부정한 음식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세관을 통과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무슬림 관리들의 눈을 피해 산 마르코의 유해는 828년 1월 31일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시민들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서 도제는 유해를 인수하여 궁전의 요새에 보관했고 산 마르코 대성당이 건립된 이후에 그곳에 안치했다.
그런데 왜 기둥 위에는 산 마르코의 인물상이 아니라 날개가 달린 사자상이 있을까?
사자는 성인 마르코를 상징한다. 구약성경 에제키엘서와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하느님을 보좌하는 네 생물 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를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네 명의 복음사가 마태(사람), 마가(사자), 누가(황소), 요한(독수리)과 연결시켰다. 여기서 사자와 마르코를 연결한 근거는 알 수 없으나 마가복음 1장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시작하는 것을 교부들은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에 비유해서 서로 연결시켰다.
아무튼 베네치아 공화국은 산 마르코의 유해를 베네치아에 안치하고 수호성인으로 추대한 후에 마르코와 연결되는 사자를 공화국의 상징물로 채택했다. 사자에 날개를 단 산 마르코의 사자(Leone di San Marco)는 국가의 정체성으로 확립되었으며 공식 문장과 깃발에 사용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곧 산 마르코의 사자였던 것이다.
서쪽에 있는 기둥은 산 토다로 기둥(Colonne di San Todaro)이라 부른다.
토다로는 베네치아 초기의 수호성인 테오도르(Theodore)를 일컫는 베네치아어다. 이탈리아어로는 테오도로(Teodoro)로 표기한다.
테오도르는 로마의 속주 갈라티아 폰투스의 아마세이아에서 로마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는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 때 신전에 재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거부하고 하느님에게 기도하며 신전을 불태우다 체포되어 화형당하므로서 순교자가 되었다. 아마세이아는 현재 튀르키예의 아마시아 도시를 말한다.
테오도르는 순교된 후에 동로마 제국의 성인으로 숭배되었고 베네치아도 동로마 제국의 영향으로 초기에 수호성인으로 추앙했다. 테오도르와 용의 이야기는 7세기 이후에 묘사되는 기독교 도상학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기독교에서는 용맹한 전사, 악에 대한 승리의 상징성으로 성인 테오도르와 용을 죽이는 모습이 함께 표현되었다. 그렇다. 동양에서의 용은 상서로운 동물로 신성한 존재로 표현되지만 서양에서 용은 사탄의 화신으로 사악한 존재로 묘사된다. 같은 상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베네치아의 산 토다로 기둥 위에 있는 테오도르 성인의 발 아래에는 용이 아니라 악어다. 왜일까?
ㅣ마르치아나 국립 도서관(Biblioteca Nazionale Marciana)ㅣ
마르치아나 국립 도서관은 산 마르코 공공 도서관(Libreria pubblica di San Marco)으로도 불린다. 두칼레 궁전을 구경하고 가 본다는 것이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여행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고 생각이 날 때 바로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해야 한다. 모든 관광은 망설이거나 지나치면 그만이다. 다시 볼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마음만 먹으면 나중에 다시 갈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쉽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에 마르치아나 국립 도서관은 가서 보았으나 제대로 보지 못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광장에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광장 주변만 거닐었는데도 반나절이 훌쩍 지난 것 같다.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흐르는지....
ㅣ석호의 부두 몰로(Molo)ㅣ
산 마르코 광장의 피아제타 끝에는 석호의 부두 몰로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다. 예전에는 외국의 대사나 고위 인사들이 내려서 처음으로 베네치아 땅을 밟는 터미널이었고 무역 상선과 전함들이 입항하던 관문이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는 쉴 새 없이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을 실어나르기 바쁘다. 구경하는 사람은 구경하느라 몰려다니고 배를 타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바삐 움직인다. 다만 레스토랑의 탁자에 앉은 사람들만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
3) 레온치니 소광장(La Piazzetta dei Leoncini)
레온치니 소광장은 산 마르코 대성당과 시계탑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광장이다. 산 마르코 광장의 대광장 피아자와 소광장 피아제타에 비해서 광장이 넓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구석에 묻혀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몇 개 안되는 계단과 광장 중앙에 있는 옛 우물을 두르고 있는 3개의 계단으로 관광객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계단에 퍼질러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는 것 같아도 세상에 편한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왜 그럴까?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쉴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리에 의자라도 만들더라도 그 많은 관광객을 다 수용할 수 없으니 아예 없애버린 것일까? 특히 유명 관광지에는 공공의 의자가 없다. 그러니 피곤한 사람은 아무데라도 앉아서 쉬어야 하는데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 공공의 장소에 상점의 탁자와 의자는 한없이 펼쳐져 있어도 공용 의자는 한두 개조차 찾아보기 힘든 나라가 이탈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