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알 수 없었던, 출산 스토리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by 숨의온도


2022년 2월 21일 사랑하는 나의 천사가 탄생한 날이다.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임신 기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지 않은 나는, 어디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어 거의 집에서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는데... 내 추측엔 막달쯤 아기가 뱃속에서 태동도 없고 위험한 상황이 한번 있었는데 그때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입원했던 그날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던 거 같다.


하루 만에 괜찮아져서 퇴원을 하였지만 기쁨도 잠시... 그 후 나에게 일어날 일은 알지 못했다.



며칠 뒤 38주 정기 검진 날 아무래도 아기가 뱃속에서는 몸무게도 늘지 않고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니 아기를 일찍 꺼내서 잘 키워보자며 유도분만을 권유하셨다. 당장 다음날 입원하라는 말에 급하게 코로나 검사를 하고 집에서 입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문자를 확인하고 느낀 당혹스러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코로나 양성입니다.'


나만 코로나 양성, 남편은 음성이었다.


일단 남편이 산부인과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알렸다. 병원에서는 코로나 환자는 따로 병실이 없어 출산 일을 미루거나 코로나 환자도 출산할 수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근데 지금 산모님 상황은 자궁경부길이도 1cm도 남지 않아 출산 가능한 병원을 지금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보건소에 전화해서 상황을 알리니 지금은 병원이 없어 기다리라고만 한다.

그 당시 진통이 오는 임산부가 코로나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에서 출산을 했다는 기사나 헬기에서 출산을 했다고 하는 기사들이 있었는데 나도 그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커졌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병원을 갈 수 있다며 연락이 왔다. 곧 20분 내로 갈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고,

불안함에 밤을 꼴딱 새운 나는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코로나 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갔다.




병원으로 가는 길...

생각보다 승차감이 너무 안 좋아 멀미를 하였다.

병원에 도착하여 입소 시 안내사항과 심리검사 등.. 뭔가 많은 것을 하였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링거 맞으면서 출산 전 이것저것 검사도 하고 초음파도 봤다.

내가 쓰는 병실은 6인실이었는데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커튼이 없다.

음압기계가 병실 가운데 있었는데 웅~~ 웅~~ 소리가 어찌나 큰지 어쩔 때는 차가운 바람이 나와서 너무 춥고, 어쩔 때는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숨 막히게 더웠다.

자나 깨나 밥 먹을 때 빼고는 계속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해서 결국 퇴원할 때 보니 귀 뒤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처음 입원하고 먹은 밥!


이때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10시에 수술을 들어가고 남편도 없이 혼자 낯선 곳에 와서 처음 겪는 출산까지 한다니 너무너무 무섭고 떨렸지만 , 이제 곧 내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난 잘할 수 있어! 건강하게만 나와라" 하며 버텨냈던 거 같다.

수술할 때 수술실은 왜 이렇게 추운지.. 계속 몸을 떨었다.

수술대에 누워 등을 새우등으로 굽히고 척추에 하반신 마취를 하는데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아무 느낌이 없었다. 조금 있으니 몸도 움직여지지 않고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하고 얼마 안 있었는데 "곧 아기 나와요 몸이 많이 흔들리실 거예요" 하더니 나의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뭔가 "푸씨푸씨" 하면서 기계소리가 들리더니 "왜 이렇게 안아오지?" 하는 말과 함께 몇 번 더 몸이 흔들리더니 뭔가 와락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10시 28분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마음도 뭔가 편해졌다.

38주 3일에 2.4kg으로 태어난 나의 천사는 너무나 작고 작았다.


코로나에 걸린 나는 아기를 만져볼 수도 안아볼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가듯 멀리서 지켜보며 아기를 보내줘야 했다.



첫 유축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초유 양도 많이 나왔다. 근데 위생 상 아기에게 먹일 수 없어 버려야 했다.


임신할 때는 몰랐던 사실은.. 출산도 힘들지만 그 후가 더 힘들다는 것이다.

수술한 곳도 아팠지만 가슴이 너무너무 상상이상으로 아파오는데 이걸 풀어줘야 젖몸살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의사 선생님은 가슴 마사지 계속해주고, 풀어줘야 한다며 젖몸살 와서 열나고 하면 퇴원 못 시켜준다고 하셨다. 근데 병실에는 CCTV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인터넷으로 온갖 젖몸살 관련된 마사지 영상을 찾아보며, 화장실 변기에 앉아 마사지를 하며 나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던 거 같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친구가 원래의 가슴의 느낌만큼 풀어줘야 한다고 했을 때는 이 딱딱한 가슴이 어떻게 다시 말랑해지지? 의문이 들었지만 정말 마사지를 계속하고 가슴을 엄청 혹사시키 고나니 진짜로 부드러워졌다.


또 하나 너무 힘들었던 거는 2~3시간마다 유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아기에게 먹이지도 못하는 모유를 2~3시간마다 밤낮없이 유축하는데 잠을 못 자서도 힘들었지만 CCTV를 피해 구석에서 유축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심적으로 더 힘들었었다.

음압병실이라 밥이 편의점 도시락처럼 제공되는데 반찬이 차갑기도 하고, 먹으면서 구역질이 나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입원기간 동안 출산 전 한 끼를 제외하고 출산 후에는 거의 밥을 못 먹었던 거 같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나는 결국 퇴원 전날 탈이 나고 말았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곧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 들면서 혈압은 180 이상이 나오고 간호사한테 너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못하겠고, 일어나 병원 복도를 하염없이 걸으며 언제 퇴원할 수 있냐고 빨리 퇴원시켜 달라고 진상을 부렸다.


다음날 아침 전산처리가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어 점심 전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밖에 나오니 조금을 살 것 같았다. 남편을 보자마자 그간의 서러움이 폭발하면서 하염없이 엉엉 울었다. 조리원 측에서 산모님은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으니 아기만 먼저 입소하고 나는 이틀 뒤 들어오라고 했다. 남편과 병원 근처에 카페에 가서 그동안 참아왔던 커피를 테이크아웃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5일 동안 씻지 못해 찝찝했던 몸을 드디어 씻고, 누워서 좀 쉬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바닥에 엎어져 쓰러지기 직전인 나를 붙잡고, "정신 차려야 돼!! 아기 생각하면서 의식 잃지 마!" 소리를 치며 119에 전화를 걸어 빨리 와달라고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지 싶으면서 아기가 떠올라 미안함에 몸부림치고 살고 싶다고 어떻게든 숨을 쉬어보려 하는 중 구급대원들이 왔다. 당장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간단한 검사들을 집에서 해주시며 상황 설명을 들으셨는데 몸에 문제보다 심리적인 것 때문으로 보인다고 그렇지만 갈 수 있는 병원을 원하면 먼 곳이라도 더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결국 병원을 찾지 못해 출산을 하였던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나의 상태에 대해 말을 하니 그럼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퇴원한 지 하루도 안돼 다시 구급차를 타고 말았다.

그때 시간이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출산을 해주셨던 의사 선생님이 당직이 아닌데 나의 이야기 듣고 놀래서 왔다며 증상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이것저것 검사를 했는데 혈압만 180 이상이 나오고 나머지는 다 정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며 나를 안아주시면서 많이 힘드셨냐고 코로나에 걸린 건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몸에 아무 이상 없으니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해주셨다. 아무래도 '과호흡'인 거 같다고 집에 가서 또 그런 증상이 생기면 봉지를 입에 대고 천천히 숨 쉬어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또 눈물이 쏟아지며...


"왜 나에게 갑자기 이런 일들이 생긴 걸까.."

행복해야 하는 출산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순탄하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다행히도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의사 선생님의 위로에 마음이 편해진 나는 잠이 들었다.


순탄하지 않았던 출산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나를 성장시킨 순간들 중 하가 되었다.

나는 힘들었지만 잘 이겨내었고, 더욱 강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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