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어린 나의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난 더욱 틀별하다.

by 숨의온도

지나간 아픔을 다시 떠올려 꺼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내가 만든 감옥에 날 가둬두지 않으려고 한다.


아빠의 의처증과 도박문제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으며,

엄마가 날 임신하던 당시 상황이 어려워 아이를 지우라고 했었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 만삭인 몸으로 한강에 뛰어 들 생각까지 하셨던 우리 엄마...

그렇지만 뱃속의 아기를 위해 차마 포기를 할 수는 없으셨다고 하셨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태몽이 너무 좋았는데

드 넓은 동산에 황금벼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 "갖고 싶다"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너 다 가져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난 입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추운 겨울날 이 세상에 태어났고,

기쁨의 순간도 잠시.

아빠는 정말 내 아이가 맞는지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아빠와 너무도 닮은 나를 보며 자신의 자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막상 태어나고 보니 너무 예뻐해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태몽이 좋았던 것이 이유가 있었던 건지 한동안 집에 좋은 일들도 많이 생겼었다.


그렇게 4년이 흘러 남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아빠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났고, 도박 중독에 더욱 빠지게 되어

아빠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빌리며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서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을 부렸다.

점점 우리 가족은 평범함에서 멀어져 갔고,

집에 어떤 아저씨들이 찾아와 빨간딱지들을 여기저기 붙이고 가고,

어느 날은 집에 누군가 문을 열라며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모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어있어야 했다.


급기야 아빠는 나와 동생을 고아원에 버리라고까지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형편이 안됬던 엄마는 정말 나와 동생을 데리고 고아원으로 향했고,

고아원에서는 남매가 4살 차이가 나서 한 고아원에 함께 있을 수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남매마저 떨어트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상황을 안쓰럽게 생각하시던 할머니께서 결국은

"어떻게 자식을 버리니.. 얼른 집으로 데리고 와라"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와 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버림받을 위기에 우리를 구해주신 너무나 고마운 분이시지만

나의 불행은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에게 라면 더욱 나의 존재의 가치는 바닥을 친다.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날 이후의 나의 하루하루는 어린아이가 견뎌내기 버거웠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게 자리 잡으신 분이셨기 때문에 남동생과 여자인 나는 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고,

음식도 동생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씻다가도 물을 왜 이렇게 많이 쓰냐면서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물어 꺼버리는 일이 다 반 수,

대소변을 보고 변기 물을 내리는 것도 한번 물 내리는 게 얼마인 줄 아냐면서 혼나야 했다.

편하게 누워 잠을 자는 것도, 기본적인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통제와 구박 속에서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다.


할머니의 발소리조차 무서움에 떨어야 했던 시절 속.


난 항상 생각했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날 미워하는 거지?"

"내가 없어지면 모두가 편해질까?"


수없이 자책하고 나한테서 이유를 찾으려고 발버둥을 쳤던 거 같다.


돈이 없어 집을 떠나갈 수 있는 곳이 없었던 나에게

그때 유일하게 집에서 벗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점 바닥에 앉아 책을 읽거나,

가장 멀리 가는 노선이 긴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배가 고플 때는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에서 시식을 하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다.

평일에 학교를 가는 날은 그래도 친구들과 놀 수 있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어김없이 할머니의 구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벗어나 어딘가를 가야 했다.

밤이 되어 잠을 잘 때가 다 되어서야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청소 일을 하시던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출근을 하셨는데, 그때 할머니가 출근을 하시고 나면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씻을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같이 놀다가 친구가 집에 간다고 하면 털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난 왜 태어난 걸까?" 자책하는 생활을 해나가는 반복된 일상 속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고,

할머니께서는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완전히 기억을 놓으시기 전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빠를 닮아 너무 미워서 그랬어 미안했다."



딸이 아빠를 닮았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고 구박을 받아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지 않을까?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난 할머니께 그 말을 들으며 "미안하다"라는 사과를 받았을 때 할머니를 용서하게 됐다.


그토록 이유를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었는데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를 알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살아가며 겪어야만 했던 지난 아픔들은 나의 잘못들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런 환경에서도 난 이겨내고 올바르게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난 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환경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던 나의 거짓 자아들에 자기 존중감이 떨어졌던 적도 있었지만 난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좀 더 굳건하게.

좀 더 당당하게.


나도 아픔을 겪었기에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공감해 줄 수 있다.


누군가는 나를 통해 위로받길 바란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아계신다.

과거는 가슴 한 곳 깊은 곳에 묻어두고,

발판으로 딛고 나아갈 것이다.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면 못 했던 말을 해드리고 싶다.


"할머니에게는 너무나 소중했을 딸이 사위 때문에 고생하는 게 안쓰럽고 속상해서 그 두려움과 불안을 아빠를 닮은 손녀에게 풀어야만 했던 그 심정 이제는 다 이해한다고...

할머니 덕분에 더 바르게 살아 나갈 수 있었고,

세상의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었다고.."



용서할게요.


그곳에서는 무거운 짐 편히 내려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