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vs. 나는 사랑받으니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vs. 나는 사랑받으니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문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습니다.
감각도, 경험도, 전통도 믿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기 자신, 생각하는 ‘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고’를 존재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이 말은 이후 서구 세계에 강력한 뿌리를 내렸습니다.
인간은 사고하는 주체로서 존엄하다, 생각할 수 있기에 인간은 특별하다.
철학과 과학, 합리적 이성의 발전은 이 명제 위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합니다.
생각할 수 없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픈 이, 연약한 이, 스스로 사고할 수 없는 어린아이와 노인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사고가 존재의 근거라면, 인간의 존엄은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전혀 다른 토대를 제시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여기서 인간의 존재 근거는 ‘사고’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말은 인간을 고립된 존재로 만듭니다.
그러나
요한일서의 말씀은 인간을 관계 안에서 세웁니다.
사고는 나를 혼자로 남기지만, 사랑은 나를 공동체 안에 세웁니다.
사고는 불안정하지만,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받고 있기에, 나는 존재합니다.
사고가 무너져도,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은 존재를 붙잡습니다.
사람의 존엄은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확증됩니다.
세 줄의 지혜
생각은 나를 설명하지만,
사랑은 나를 존재하게 한다.
존재의 근거는 사고가 아니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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