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vs 아말렉을 지워라?
한 주간을 위한 파라샤는 레오의 개인적인 묵상이고 질문이고 길을 찾는 과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겉으로는 서로 충돌하는 듯한 말씀을 만나곤 합니다.
“내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44)와
“아말렉의 기억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버리라”(신명기 25:19)도 그중 하나입니다.
한쪽에서는 사랑과 용서를 말씀하시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억과 제거를 명령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순된 말씀을 주신 걸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원수는 나와 갈등을 빚거나, 일시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관계의 회복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아말렉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쳐 있을 때, 뒤에 남은 약자들을 공격하며 거룩을 파괴했던 민족입니다(출애굽기 17:8–16).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 갈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었습니다.
*현재적 시간(오늘): 원수를 향해 사랑을 선택하라.
→ 미움과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거룩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종말적 시간(궁극): 아말렉을 기억하고 지워라.
→ 이는 개인적 보복이 아니라, 하셈이 역사 속에서 악의 근원을 최종적으로 제거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두 말씀은 서로 다른 차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쪽은 삶의 태도, 다른 한쪽은 역사의 결말을 가리킵니다.
쉐미니(여덟째 날)의 신학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오늘, 내 앞에 놓인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선택이고,
“아말렉을 지워라”는
종말,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시간 속의 사건입니다.
즉, 두 말씀은 모순이 아니라 현재와 종말의 이중 구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해서는 → 사랑하라.
악의 구조와 아말렉의 영을 향해서는 → 기억하고 지워라.
겉으로는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과 심판이라는 두 층위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삶 안에서는 사랑을 요구하시고,
역사의 종말에서는 악을 뿌리째 뽑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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