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3화] 반복되는 코너
도시는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입구를 드러낸다.
08:08에 멈춘 시계, 여덟 번 울리는 신호음,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코너.
하민은 그 반복 속에서 시간을 바꾸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민은 을지로의 좁은 골목을 빠른 숨을 몰아쉬며 걸었다.
낯익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같은 간판, 같은 잉크 냄새, 같은 금속 소리.
그리고 실외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정확히 여덟 번 튀었다가 멈췄다.
“말도 안 돼…”
그의 목소리가 골목 벽을 스치며 되돌아왔다.
단순한 기시감이 아니었다.
마치 시간이 되감기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되돌리면 편해.”
낯선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하민이 화들짝 돌아보자,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우산 손잡이가 바닥을 스치며 여덟 번 울렸다.
“누구세요?” 하민이 경계하며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너는 나를 모를 거야. 하지만 나는 너를 안다.”
얇은 미소를 지은 그는 시계를 들어 보였다.
시계의 모든 바늘이 겹쳐져 08:08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민은 손을 떨며 주머니 속의 빨간 고무공을 움켜쥐었다.
공은 미세하게 진동하며 여덟 번의 규칙적인 맥박을 전했다.
그때 코너 옆 전봇대에 희미한 흰 분필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내가 안 썼는데…” 하민이 중얼거렸다.
“시간이 대신 기록하지.” 남자가 대꾸했다.
“선택은 필압이 세거든.”
하민은 코너를 돌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그 전봇대를 보았다.
숫자 ‘1’ 아래에 또 다른 숫자가 흐릿하게 겹쳐져 있었다.
‘2’.
“봤지? 네 발걸음이 시간을 바꾼 거야.”
남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곳은 반복이 아니라 기록이야.”
멀리서 삑― 삑― 신호음이 여덟 번 울렸다.
하민은 귀를 막고 고개를 젓다가, 코너와 코너 사이의 아주 좁은 골목 틈을 보았다.
늘 쓰레기 봉투가 막고 있던 그곳이, 오늘은 비어 있었다.
“저기… 문이 있는 거죠?”
“그래.” 남자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탈출구가 아니라 통과구다.”
“무슨 차이에요?”
“탈출은 되돌아가기고, 통과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 네 선택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
하민의 숨이 가빠졌다.
탈출은 유혹적이었지만, 그 길은 과거로 되돌아갈 뿐이었다.
통과만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더 많은 것을 잃게 할지도 모른다.
“여기는 뭐죠? 왜 저만 이런 걸 보나요?” 하민이 묻자 남자가 대답했다.
“08:08은 시작점이다. 모든 시간은 그 시각에서 분기한다.”
그의 말은 마치 암호처럼 골목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네가 처음으로 선택을 했을 때,
그 순간부터 도시가 너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시험이라고요?”
“문은 인간의 선택을 먹고 자라.
네가 올바르게 선택하면 문이 열리고, 잘못 선택하면 그 문에 네 시간이 갇힌다.”
남자의 말은 경고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민은 주머니 속 고무공을 움켜쥐었다.
아침에 아이를 구했던 작은 선택.
그 선택이 지금의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한 것이었다.
하민은 골목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좁은 공간 안의 공기는 다르게 흘렀다.
잉크와 금속 냄새 대신, 젖은 종이와 오래된 종이책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계단 끝에는 낡은 금속문이 서 있었다.
벽과 색이 거의 같아, 빛의 각도에서만 문 윤곽이 드러났다.
문 한가운데에는 희미한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하민은 손바닥을 문에 올렸다.
문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미열이 느껴졌다.
그때, 공간을 흔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고 싶어?”
하민은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아니.” 그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들어가고 싶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문 표면의 먼지가 흩날렸다.
숫자 ‘2’가 천천히 떠올랐다.
두 번째 칸이 열리고 있었다.
뒤에서 여덟 번의 신호음이 다시 울렸다.
삑― 삑―.
도시는 하민의 선택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골목의 공기와 시간의 질감이 조금씩 달라졌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기억해라.
네가 한 선택이 곧 시간이다.
문은 선택을 통해만 열린다.”
하민은 계단 아래 빛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 빛 속에서 희미하게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골목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세 번째 문의 낮은 숨결이 들려왔다.
그 순간, 하민의 이름을 부르는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
“하민…”
[1-4화] 벽이 숨 쉬는 소리 ― “두 번째 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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