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의 문(연재)

[시즌 1 – 5화] 금속 위의 속삭임: 누가 네 이름을 쓰는가

by Leo Song

[시즌 1 – 5화] 금속 위의 속삭임: 누가 네 이름을 쓰는가





인트로


문이 열리면 길이 보이고, 길이 열리면 이름이 불린다.
그러나 그 이름이 진짜 너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써 넣은 것인지를 아는 순간,

도시는 다시 되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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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숨 쉬는 두 번째 칸에서 하민은 죽은 필름들을 보았다.

선택하지 않은 과거가 불타 사라지고, 실루엣은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혼란을 주었다.

벽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남는 자와 통과하는 자를 내가 결정한다.”





1. 뒤돌아보지 마


“하민, 뒤돌아보지 마.”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날카로웠다.
나는 숨을 삼키며 멈춰 섰다.

차가운 공기가 목 뒤를 간질였다.

진짜일까? 아니면 또 다른 흉내일까?

발뒤꿈치가 저절로 흔들렸다.
뒤돌아보고 싶은 욕망이 몸속에서 여덟 갈래로 갈라져 꿈틀거렸다.



“엄마…?”

작게 부르자, 복도의 어둠이 들숨처럼 부풀었다.
그리고 바로 날숨처럼 푹 꺼졌다.

그 사이에서 차갑고 얇은 금속음이 들렸다.
누군가 금속 위에 글씨를 새기고 있었다.





2. 금속 위의 소리


찰칵―

칼날 같은 소리가 반복되며 어둠에 스며들었다.

하나,

둘,

셋…

여덟.

그 규칙적인 음이 신호음처럼 내 심장을 두드렸다.

“누구야!”

나는 소리쳤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그 소리의 마지막 음절이 내 이름을 완벽히 따라 했다.

하…민.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이름을 쓰는 거야? 누가?”
숨소리가 가빠졌다.

도시는 이름을 통해 사람을 묶는다.
그걸 내가 너무 늦게 깨달은 걸까?





3. 낡은 벽, 살아 있는 필체


손끝이 복도 벽을 스쳤다.

페인트 아래, 금속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글씨를 새기는 순간의 감각과 똑같았다.

나는 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 벽 전체가… 종이인가?”
그리고 깨달았다.

여기서는 내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누군가가 내 발자국을 글자로 기록하고 있었다.

뒤에서 속삭임이 따라왔다.

“네가 누군지 모른다면, 우리가 대신 써줄게.”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 이름은 내가 정해.”

그러나 벽은 날 비웃듯, 내 이름을 계속 갱신했다.


하…민. 하민. 하민.





4. 도윤의 목소리


“하민!”
이번에는 도윤의 목소리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서 작은 빛이 흔들렸다.

휴대폰 화면이었다.
도윤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너 진짜 여기 있었구나!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그를 향해 달렸다.

“도윤! 제발… 같이 나가자.”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야. 네가 선택을 끝내기 전까지 나도 못 나가.”

“선택?”

“누가 너의 이름을 쓰는지 확인해. 그게 이곳의 규칙이야.”

도윤의 눈빛은 평소보다 차가웠다.





5. 금속의 비밀


도윤이 벽을 가리켰다.
벽 안쪽에서 또다시 금속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그걸 들어야 해.”
나는 귀를 가까이 댔다.

찰칵, 찰칵―
그리고 숨을 멎게 하는 단어가 들렸다.

엄마.

“멈춰!” 내가 소리쳤다.
금속음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엄마 → 도윤 → 하민 → 08:08.

“이건… 이름만 쓰는 게 아니야.”
도윤이 낮게 속삭였다.


“여기선 관계와 시간까지 기록된다.

너의 모든 연결을 벽이 알고 있어.”





6. 이름의 무게


“그러니까…”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내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가, 내가 누구인지 결정한다는 거네.”

“맞아.” 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면, 너의 선택도 왜곡돼.”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엄마의 목소리,

도윤의 목소리,

그 모든 게 사실은 도시의 기록 장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장치가 쓴 **‘하민’**이라는 이름 안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도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벽이 네 이름을 쓰기 전에, 네가 스스로 첫 글자를 새겨야 해.”

“첫 글자…?”

“그게 진짜 시작이야.”





7. 첫 글자


나는 고무공을 꺼내 손에 쥐었다.

손바닥에서 여덟 번의 진동이 울렸다.
그 리듬을 따라, 벽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내가 정할게.

내 이름은 내가 쓴다.”

손끝에서 미약한 불꽃이 튀었다.

페인트 아래 금속이 살짝 파였다.

첫 획, 그리고 두 번째.

벽이 고통스럽게 날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복도 전체가 흔들리며 새로운 통로가 열렸다.






8. 배신


도윤이 갑자기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멈춰!”

“왜 그래, 도윤?”

그의 손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너… 첫 글자를 쓰면 안 돼.”

“하지만 네가 그랬잖아!”

“나는… 그 벽의 일부야.”

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너를 여기 남기기 위해, 나는 너를 속였어.”

순간, 벽의 모든 금속판에서 한꺼번에 이름들이 쏟아졌다.

엄마,

도윤,

하민,

그리고 알 수 없는 수십 개의 이름들.

도시는 우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있었다.





9. 도망


“하민, 뛰어!”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엔 진짜 같았다.
나는 도윤의 손을 뿌리치고 열린 통로로 몸을 던졌다.
벽은 내 이름을 부르며 뒤에서 쫓아왔다.

“하민! 하민!”

그 목소리는 내 것과 완벽히 같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쫓기는 기묘한 추격전.


이건 선택이 아니라 심문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계단을 뛰어올랐다.





10. 진짜 이름


계단 끝에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에는 또 다른 문이 서 있었다.
문 위에는 낡은 손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벽에 첫 글자를 썼다.

하…

금속이 따뜻하게 반응하며 숨을 쉬었다.
그리고 문이 조금씩 열렸다.
빛이 스며드는 그 틈에서, 또 하나의 글자가 새겨졌다.

민.

“내 이름은… 내가 쓴다.”

벽이 마지막으로 날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그러면, 너는 통과자가 된다.





클리프행어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 너머에서 세 번째 칸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민, 이제… 돌아와.”





다음 화 예고


[1-6화] 종이 냄새와 어둠 ― “세 번째 칸의 기록은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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