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직도 사천 갱변에 삘기가 있을까

by 한나


아직도 사천 갱변에 삘기가 있을까

그 시절엔 어린 걸음으로 한 시간씩이나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내를 건너고 들판을 지나며, 바람과 햇빛이 길러 내던 수채화 같은 풍경들의 일부로 우리의 몸도 생각도 조금씩 자라 갔다.
산모롱이를 돌아 서면 옆동네로 이어졌는데 주황색 무늬가 박힌 초록 뱀들이 우리 눈앞에서 유유히 길을 가로질렀고, 로켓처럼 슝슝 물 위를 가르는 물뱀들도 심심찮게 만나곤 했다. 속은 바짝 쫄기도 했지만 그렇게 산과 들과 함께 사는 두려움과 자유로움의 여러 모양을 스스로 익혔던 것 같다.
흙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쓴 산딸기 울타리 너머 사과와 배가 어린 우리를 살뜰히 유혹하던 과수원을 꿋꿋이 지나 초등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
그땐 특별한 날이 아니면 과일도 귀했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보리쌀을 한 보따리 머리에 이고 가서는 복숭아를 바꿔 오시면 한동안 우리에게 달콤한 시간이 허락되곤 했었다.
굽이굽이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 몸집보다 몇 배나 더 큰 누런 소들을 앞 세우고, 조막만 한 손으로 길다란 고삐를 움켜 잡고는 그렇게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러 갱변으로 향했다.
선머슴아처럼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밥이나 하라는 엄마 말은 귓등을 스치는 바람소리었을 뿐. 들로 강으로 쏘다니는 나를 잡아 두지 못했다.
봄볕에 통통하게 솟아 오른 뽕구(삘기)를 뽑아서 겉껍질을 젖히면 촉촉하고 달짝한 젖은 실뭉치 같은 속살이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우리가 간식으로 즐겨 먹었던 삘기나 찔레순이나 개머루, 소나무껍질, 그런 것들은 먹을수록 허기가 더했다.
그때 누군가 납작한 돌을 주워 오라고 했고, 모래밭이라 검고 깨끗한 자갈돌이 많았었던 것 같다. 납작한 돌 위에 조롱조롱한 아까시 꽃잎을 넣고 남은 돌 하나로 뚜껑을 덮었다.
기둥돌 두 개를 양끝에 세우고 돌판을 그 위에 올리면 그럴듯한 솥단지가 되었다.
그리곤 돌솥단지 아래 마른 나뭇가지로 불을 지폈다. 강가 맑은 햇빛 아래 오렌지빛 불꽃이 투명하게 호르륵 타 올랐고 돌판 사이의 꽃이 익으면서 겹친 돌 사이로 달콤한 꽃향이 웃음처럼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다른 주전부리들처럼 드넓은 강변의 아까시꽃 구이도 달콤한 맛에 허기진 우리 배를 불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채우기엔 충분했던 걸까
어디선가 그 시절 코끝에 달짝하게 묻어나던 아카시아 꽃향이 겨울 창문을 넘어 날아 들어오는 것만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장 앞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