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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떡

by 한나

감자떡

그 시절,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남다른 솜씨를 지닌 엄마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리 중 대부분 맘 놓고 돈으로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기도 했지만 엄마는 웬만한 간식거리들은 손수 만들어 주셨다. 그 때문에 친정집 가마솥은 늘 바빴다.
도토리나 메밀로 묵을 쑤거나 감주를 만들거나 그중에서도 자주 가마솥을 차지했던 것은 조청이었다.
조청의 종류도 다양했다. 고구마를 한솥 가득 삶아서 고구마조청을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약초를 넣은 약초조청을 만들어서 건강보조 식품으로 응용하기도 했다. 조청을 달이느라 종일 방바닥이 불이 나는 날은 우리 모두는 엄마의 강업적인 불고문을 당해야 했다.
구들장이 탈 듯이 뜨거운 방에 우리 형제들을 나란히 눕혀 놓고는 두꺼운 이불을 덮어서 땀을 빼게 했다.
조청이 되기 전 묽은 것을 한 그릇씩 마시게 하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더워서 죽을 것 같았다. 엄마 몰래 이불 귀퉁이를 들썩 거려서 찬바람을 들이마시는 반칙을 쓰기도 했다.
만주나 일본 등지로 다니시면서 한의학을 공부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사랑채에 한약방을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도 서당개풍월로 동네 사람들에게 침도 놔주고 산이나 들에서 캐 오신 약초로 민간요법을 쓸모에 따라 슬기롭게 잘 응용하셨다.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간식은 분식점 못지않았다. 강낭콩이 콕콕 박힌 막거리로 발효시킨 술빵이나, 팥소가 가득 든 찐빵도 가마솥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우리를 배 부르게 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메뉴는 감자철이 되면 작은 감자를 골라 껍질을 까고 얇게 얇게 썰어서 쌀가루인지 밀가루인지 가루를 입히고 강낭콩을 술술 뿌려서 가마솥에 삼베 보자기를 깔고 찌면 식으면 식을수록 맛있는 감자떡이 완성되었다.
혀끝에 은은하게 단맛과 짠맛이 어우러진 쫄깃한 감자떡을 우리는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는데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맛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어서 몇 번 시도해 봤지만 엄마의 그 맛이나 식감을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다. 우리 형제들이 모이면 빼놓지 않은 이야깃거리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얀 꽃 자주꽃 소박한 감자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아마도 어김없이 감자떡 생각이 간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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