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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Jul 25. 2024

충분히 좋은 상담사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충분히 좋은 상담사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이번 한 주도 특별한 일 없이 잘 지냈나요?


내담자: 아니요. 곧 시험 봐요.


나: 그렇군요! 지금 시험기간이겠네요. 언제 시험 보나요?


내담자: 다음 주에 시험 봐요. 아 잠을 못 자서 피곤해요.


나: 많이 못 잤어요? 어제는 몇 시에 잠들었을까요?


내담자: 새벽 3시에 잠들었어요.


나: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났어요?


내담자: 아침 7시요. 


나: 4시간 밖에 못 잤네요. 많이 피곤하겠어요. 오늘 상담 괜찮겠어요?


내담자: 진짜 피곤해요. 그렇다고 시험공부를 안 할 수 없으니까요.


나: 그렇죠.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 수 없고, 하지만 여기에는 왔고, 그렇지만 피곤한 상태. 정말 여러 부분에서 부담이 될 수 있겠어요.


내담자: 아 진짜 모르겠어요. 여기에서 지금 하는 게 상담인지도 모르겠고, 시험공부는 계속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모든 게 정신이 없어요.


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봐도 정신이 없는 게 느껴지네요. 이렇게 정신없을 때가 또 있었을까요?


내담자: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좀 쉬고 싶어요.


나: 그래요. 지금은 조금 쉬어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조금 차분해지는 것도 좋겠네요. 숨 크게 들이마셔볼까요?


내담자: (숨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후) 안 차분해지는데요?


나: 조금 더 해볼게요. 10초 정도에 1번씩 숨을 쉬는 거라고 생각하고, 배가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는 게 중요해요. 배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걸 10번 정도 반복해 볼게요.


내담자: 네.


(10번 반복한 후)


내담자: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나: 다행이에요. 지금 한 게 복식호흡인데, 차분해지고 침착해지는 것을 목표로 최소 1분~3분 정도 하면 좀 나아지는 것을 느낄 거예요. 정신이 조금 돌아왔나요?


내담자: 네. 그래도 조금 돌아왔어요. 


나: 저도 가끔씩 이렇게 호흡을 할 때가 있어요. 꽤 도움이 되는 걸 경험했어서, 내담자에게도 해보자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내담자: 네. 저도 가끔씩 해야겠어요. 그리고 생각들이 정리가 조금 된 것 같기도 해요.


나: 오 그래요? 어떻게 정리가 되었을까요?


내담자: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먼저 공부를 해야 할 과목을 결정했어요. 


나: 아 좋네요. 이렇게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는 것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담자: 오늘 잠깐동안 총 2가지를 얻었네요. 호흡이랑 계획 세우기.


나: 그렇죠. 이렇게 피곤하고 정신이 없을 때, 여기에 와서 뭔가 도움을 받아가고, 스스로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네요.


내담자: 신기해요. 제가 뭘 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호흡하는 거 알려준 거 빼고 뭔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제 상태가 나아졌어요.


나: 자신이 나아진 상태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내담자에게 큰 장점일 수 있어요. 지금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답니다. 내담자도 계속 자신의 상태가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저 또한 충분히 좋은 상담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죠.


내담자: 아, 이거 또 그 위니카? 그 사람이야기예요?


나: 네. 그 사람 이야기예요.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데, 도날드 위니콧 (Donald Winnicott)의 '충분히 좋은 어머니 (good enough mother)'라는 개념을 저와 내담자에게 맞춰서 적용한 것이죠.


내담자: 알겠어요. 나는 그 사람을 전혀 모르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알아서 저를 잘 봐주시니까 그거면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나: 저도 내담자가 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앞으로도 상담을 받을 것임에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그림을 그려볼까요?


내담자: 네. 오늘은 고깔을 쓰고 있는 사람을 먼저 그리고 싶어요.


나: 네. 그렇게 하죠.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자녀에게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말이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인 부분과 이상적인 부분이 만나 괴리를 경험하는 것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친정엄마로부터 받은 양육에 대한 경험을 통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살아오면서 후천적으로 느낀 여러 경험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분명 자녀의 성장이나 보람, 성취감 또는 뿌듯함 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일을 하지 않거나, 그 외의 많은 부분들을 통해 받게 되는 부담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괴리를 느끼는 것이고,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옛말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엄마가 친정엄마에게 받은 양육에 대한 경험이 중요하고, 엄마 자신과 친정엄마 사이에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인지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엄마와 자녀의 양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집에서 자녀만 키우는 엄마라고 해서 꼭 좋은 엄마는 아닐 것이다.


반대로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결코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자녀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을 하는 엄마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고 있는 모든 엄마가 절대로 좋은 엄마라고 할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자녀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하는 것은 부모가 해야 할 부분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희생이 엄마를 불행하게 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좋은 엄마 또는 충분히 괜찮은 어머니라고 한다면, 육체와 영혼이 건강한 엄마일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도날드 위니콧 (Donald Winnicott)의 '충분히 좋은 어머니 (good enough mother)'이다.


당연히 이 개념은 이렇게 단정 지을 수 없고,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고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내담자에게 하고 있는 부분은, 내담자가 '나'라는 상담사를 만나고, 보고, 듣고, 대화를 나누면서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상담을 하기 전날과 당일에 컨디션 조절을 거의 필수적으로 하고, 내담자에게 괜찮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물론 집안일이 생기거나, 불가피한 일들이 생길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를 통해, 충분히 좋은 상담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담자의 생각을 충분히 받아주면서,

필요할 때에는 상담사가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고, 

그 모습에 불안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


지금의 나는 이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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