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욕망, 충동 그리고 억누르기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어서 와요.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내담자: 네.
나: 오늘 컨디션은 어떤가요?
내담자: 나쁘지 않아요. 선생님도 괜찮아요?
나: 네. 물론 괜찮죠. 이번에도 제 안부를 물어봐주는군요.
내담자: 궁금하니까요. 앞으로도 물어봐도 괜찮죠?
나: 그럼요.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내담자 본인은 제 안부를 묻는 게 정말 괜찮을까요?
내담자: 무슨 말이에요 선생님?
나: 혹시, 제 안부 또는 다른 부분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닐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상담을 받으러 오면 대체로 상담받고 싶은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거든요.
내담자: 아.. 그렇죠. 대부분 상담받으시는 분들은 그렇겠죠?
나: 물론 내담자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제가 내담자에게 조금 더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네요. 괜찮을까요? 만약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이야기해 주셔도 됩니다.
내담자: 네 괜찮아요.
나: 지난주에는 저를 무지개 이불 같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오늘은 저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내담자: 음. 솔직히.. 이야기를 해왔잖아요. 약 11번? 12번 정도 상담을 했는데, 그래도 선생님한테 많이 솔직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나: 하지만..?
내담자: 그래서 좀 불편하게 느끼는 것도 있어요.
나: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일까요?
내담자: 말로 하기 어려운데.. 제가 선생님을 좋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과 사귀거나 모든 것을 함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을 억누르는 것도 있어요. 그렇다고 선생님이 싫은 건 아니니까, '나도 선생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는 부분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나: 어려운 마음이네요. 그리고 정말 쉽지 않은 행동과 표현일 것 같아요.
내담자: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모르겠어요.
나: 이 부분을 같이 생각해 볼까요? 조금 전에 이야기한 부분에 힌트가 있을 것 같아요. 나와 내담자가 사귀거나 할 수는 없겠죠?
내담자: 네...
나: 이 부분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내담자: 별로 좋지 않아요. 시무룩하고, 거부당한 느낌이고..
나: 그리고?
내담자: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나? 내가 별로인가? 못생겼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 그렇군요.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전혀 몰랐어요. 내가 내담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네요.
내담자: 네. 그래서 화장도 하고, 운동도 해보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사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나: 그렇군요. 상담사에게 호감이 생기고, 잘 보이고 싶고, 그런 부분들은 당연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상담의 일부라고 할 수 있거든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마음을 잘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아요?
내담자: 아니요. 실은, '선생님이 나를 싫어한다면, 나도 선생님을 싫어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 그랬군요. 내담자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나를 싫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네요. 그래서 내담자는 어떻게 했나요?
내담자: 싫어하려고 해 봤는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선생님한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리려고 의식했어요.
나: 오, 아까 처음에 저한테 안부를 물어본 것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이었군요.
내담자: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나: 좋아요. 잠깐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금 느낌은 어떨까요? 이야기하기 전과 비슷한가요?
내담자: 아니요. 오히려 좀 홀가분해진 느낌이에요. 선생님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직접 들었으면서도 저 혼자 부정적인 생각들을 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나: 아까 잘 모르겠다고 했던 내담자의 마음을, 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되돌아보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네요. 제가 이해한 게 맞을까요?
내담자: 네. 맞아요.
나: 자신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하나하나, 숨기는 것 없이, 표현을 하다 보면 분명 앞으로 훨씬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내담자: 이게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군요.
나: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래도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도움이 되는 것 같나요?
내담자: 뭐가요?
나: 상담이죠.
내담자: 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배고파졌어요.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나: 오, 상담 빨리 끝내고 뭔가를 먹어야겠네요. 그럼, 음식 그림을 그려볼까요? 물론 다른 걸 그려도 괜찮아요. 그림도구들 잘 가지고 왔죠?
내담자: 네. 오늘은 덮밥을 그려볼게요.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는 방어기제가 있다.
이 방어기제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고, 불안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신의 욕망을 인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을 억압하는 부분이 먼저 시작된다.
그리고 욕망과 정반대의 행동이나 표현을 의식해서 한다.
그래서 내담자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욕망이라고 보면, 그 마음을 억누르는, 다시 말해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내담자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내가 불편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있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부로 나의 안부를 물어본 것이다.
의식적으로 행동을 한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미운 사람에게 떡을 하나 더 주는 것, 이 행동 자체가 반동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어기제는, 자아가 발달하면서 주로 사용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강박적으로 이렇게 하다 보면 성격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번에는 눈치를 잘 챘지만, 만약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나중에 정말 나를 싫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설레는 느낌이 들 때, 누군가를 싫어하고 화 또는 짜증을 낼 때 모두 심장이 두근거리고 흥분을 하게 된다.
신체 반응이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커플이나 부부가 엄청 싸우다가 격렬한 키스를 하거나 그 이상의 행동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을 것이다.
신체에서,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내담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고, 다행스럽게도 내담자가 잘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와 내담자가 싸워야 함을, 나는 알고 있다.
나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그때, 비로소 상담 종결과정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그 이후로도, 나는 내담자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