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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Oct 24. 2024

자신을 깊게 이해하는 시간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자신을 깊게 이해하는 시간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내담자: 네 안녕하세요.


나: 별 일 없이 잘 지냈죠?


내담자: 네! 잘 지냈습니다! 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나: 그럼요. 저도 잘 지냈어요. 아 지난주에 그린 그림 잘 받았어요. 역시 그림을 잘 그렸어요.


내담자: 지난주에 상담 마치고 나서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기분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약간 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의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나: 그렇군요. 그래서 이런 그림이 나왔네요. 좋아요.


내담자: 근데요 선생님, 상대방에게 맞춰준다는 것이 저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나: 네. 맞아요. 우리 지난주에 그 이야기를 했었죠.


내담자: 네. 그래서 지금까지 저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요. 남에게 맞춰 사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죠?


나: 그럼요. 분명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어느 정도 맞춰나가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내 멋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내담자: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 제가 힘들어하는 게 비정상일까요?


나: 오, 타인에게 맞춰준다는 부분을 힘들어할 수 있어요. 충분히요. 전혀 비정상적이지 않아요.


내담자: 그렇죠? 저는 제가 힘들어하는 게 다른 사람들하고 잘 못 지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나: 그런 느낌이 또 있었군요.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내담자: 음.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잘 지내기 위해 제가 했던 노력들이 있는데, 의식을 하거나 하지 않았거나 노력을 했단 말이죠. 그 노력들이 오히려 제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것이 마음 아팠어요.


나: 그랬군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한 노력들이 과연 잘한 것인지, 아니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가 궁금했겠네요.


내담자: 네 맞아요.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나: 자, 일단 내담자 본인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해볼까요? 지난주에 했던 이야기를 상기시켜 보면, 타인이 내담자에게 요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타인에게 맞춰주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내담자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도 했던 것 같은데, 맞나요?


내담자: 네. 제가 많이 울기도 했었죠.


나: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많이 맞춰서 살아왔다고 했었죠?


내담자: 네.


나: 그 부분을 조금 더 이야기하면 좋겠네요. 부모님에게 어떤 부분들을 맞춰준 것 같아요?


내담자: 부모님과 싸우기 싫어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알아서 해놓고, 부모님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했다고 알려드렸어요. 정말 간단한 거,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손과 발을 씻는 거나 자기 전에 양치질을 하거나 숙제 같은 것들이요.


나: 그렇군요. 방금 이야기한 부분들이 내담자를 힘들게 할까요?


내담자: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니까.


나: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군요. 이번에는 반대로 당연하지 않은 일인데도 부모님한테 맞춰줬던 일들은 뭘까요?


내담자: 음. 그냥 착한 아이가 되었던 것 같아요.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시키는 것들만 하면서, 내 주장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외식을 할 때도 부모님이 정해주는 식당으로 갔거든요. 제가 먹고 싶은 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제 침대커버나 이불 같은 것들도 부모님이 정해주는 것만 쓰고 있어요. 제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았고, 저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싸우게 될 수 있으니까요.


나: 착한 아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네요. 나쁜 건 아니지만,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많은 부분을 참았고 그로 인해 마음이 힘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네요.


내담자: 제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는 게 저를 힘들게 할 수 있군요.


나: 그럴 수 있어요. 지금 내담자의 세계는, 내담자가 착한 아이일 때 유지되는 것 같이 보여요. 착한 아이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나와 만나면서 내담자가 직접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내담자: 아. 착한 아이... 충격적이네요.


나: 어떤 부분이 충격적일까요?


내담자: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관계들이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에요. 무섭고, 두렵고, 앞으로도 착한 아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겁나요.


나: 그 생각들이 내담자에게 충격을 줬군요. 


내담자: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되죠? 제가 뭘 해야 하나요?


나: 너무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리고 착한 아이가 아닌 내담자라도, 충분히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다시 말하면, 착한 아이가 아니게 된다는 말이 나쁜 아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착한 아이이자 자신의 의견도 잘 말하고,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워나간다면 훨씬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내담자: 아! 착한 아이가 나쁜 아이로 변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나쁜 아이가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충격을 받았네요.


나: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어요. 오히려 조금 더 성장한다는 느낌이 있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맞춰온 삶이었다면, 이제는 필요할 때 자신의 주장도 하고, 원하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는 내담자가 되어보는 것이죠.


내담자: 아...


나: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데, 이건 다음 시간에 또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요. 왜냐하면 시간이 거의 다 되었거든요.


내담자: 네. 뭔가 양파껍질을 벗겨내듯이 조금씩 제가 드러나는 느낌인데,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요. 이번 주도 많은 생각을 하고 와야겠어요.


나: 그래요. 상담을 통해 자신을 깊게 알아간다는 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지만,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고민되는 시간일 수 있어요. 고생이 많아요. 그래도 항상 내가 같이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내담자: 네. 감사해요. 그림을 빠르게 그려봐도 될까요? 힘들긴 한데, 지난주보다 좀 더 홀가분해진 느낌이라서, 지금 이 느낌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나: 좋아요. 그림 그리고 마무리하면 되겠어요. 




자신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상, 나의 관계들, 내가 살아온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는 건 분명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문제는 그 누구도 함부로 풀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무너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의 영역이 무너지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극도의 공포 멸절, 지난주에 내담자가 느꼈던 감정이다.


이럴 때에는 정서뿐 아니라 실제로 안아주는 것이 매우 좋다.


이걸 부모님이 해주면 더욱 좋다.


지금은 내가 상담사로서 내담자를 섬세하게, 집요하게, 악착같이 그렇지만 따뜻함과 포근함을 가지고 만나고 있지만, 언젠가 나와 같은 역할을 해줄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길 바란다.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으니 말이다.


내담자의 모습은 마치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 싫어서 임의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


안전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믿었던 자신만의 세상이, 자신만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착한 아이가 되었을 것 같은데, 내담자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진짜로 부모님이 잘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부모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저 내담자가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은 것일지도, 부모님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어쩌면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조금 잘못 맞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부모님을 만나서 양육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내담자만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지금은 내담자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착한 아이, 즉 방어 세계를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잘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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