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별한 아내를 과부라 부르는데, 남편이 도망 가서 혼자가 된 아내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미 씨는 슬퍼할 틈도 없이 호적에만 살아 있는 남편 탓에 반쪽짜리 과부란 사실을 증명하며 살아야 했다.
방랑자 남편이 애 셋을 낳고도 집안을 들락날락 거릴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이 노름판 전전하며 헛바람 들 때부터 불안했다. 끝내 빚을 지고 가족 버린 채 야반도주 한 남편. 나미 씨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달래기도 전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고 소리 지르는 그들에게 자신도 피해자란 사실을 해명해야 했다. 한동안 찾아오던 빚쟁이들은 2층이라 차마 뛰어 내리지도 못하고 창문틀에서 덜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본 뒤에야 단념하고돌아섰다.
그렇게 반쪽짜리 과부가 된 나미 씨는 딸 셋을 건사하느라 밤낮, 주말 없이 일했다. 공장일, 식당일, 청소일 등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열심히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누워서 자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매일 밤 이부자리에 누울 때마다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먹고 살기 바쁘니 고달픈 삶을 반추할 겨를도 없이 골아떨어졌다.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는 건 동아줄이었다. 나미 씨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 또 다시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담당자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부탁하고 증인을 세운 뒤 어렵사리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을 받았다. 가슴 아픈 그 단어가 나미 씨에겐 구원의 손길이었다.
나미 씨는 예뻤다. 시골 아가씨답지 않게 눈이 크고 쌍거풀이 진했다. 예쁜 얼굴에 걸맞게 영악했으면 편하게 살았을텐데, 착해서 탈이었다. 한량 같은 남편만 믿고 고향을 떠나 월세방을 전전했다. 남편이 떠난 뒤에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속 썩여도 매 한번 들지 않았다. 모질지도 못해서 같이 죽자고 달려들지도 못했다.
예쁘고 착하니 재혼의 기회도 있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사춘기 딸만 셋이었다. 혹여 험한 일이라도 생길까봐 그쪽으론 눈도 돌리지 않았다.
남편을 찾아 나선 적도 있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남편은 장기 실종 상태였다. 이 경우 단독 이혼이 가능했다. 그러나 나미 씨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손가락질 받을까봐 호적에만 있는 아빠라도 필요했다. 막내가 스무살 성인이 된 후에야 가정법원에서 이혼 절차를 밟았다. 비로소 나미 씨는 반쪽짜리 과부라는 꼬리표를 뗐다.
"엄마,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니, 엄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
칠순의 나미 씨는 딸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다. 나미 씨에게 청춘은 고통이었다. 그 시절을 어찌 버텼는지 기억하기도 몸서리쳐진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지금이 행복하다. 딸 셋이 장성해 떠난 빈둥지에서 혼자가 된 나미 씨는 그제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유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