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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13

by 홀로서기ing

나는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숙제와 시험도 열심히 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받고 우유 급식을 나눠줬는데, 나를 비롯한 몇 명만 공짜로 급식을 받았다.


'내가 잘해서 주는 상인가?'

내심 우쭐했다. 그 꼴이 보기 싫은 아이들이 선생님께 왜 쟤들만 공짜 우유를 먹냐고 불평했다. 그러자 담임은 건조한 목소리로 "불쌍한 애들이라 그래"라고 대답했다. 침묵 속에서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담임이 내 머리 위에 우유를 부은 것처럼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대표

나는 13단지에 사는 모범생이었다.


고만고만한 인간들이 사는 좁은 동네일수록 안 좋은 소문은 빨리 퍼졌다. 임대아파트를 줄지어 짓고서는 13단지에만 생활보호 대상자를 받았다. 그곳 아이들에게 '13'이란 주홍글씨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너 어디 사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듣는 단골 질문. 그 질문만 들으면 가슴이 쿵쿵거리고 식은땀이 났다. 중학교 때 12단지에 사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같은 질문을 받았다. 13단지란 말에 어두워지는 친구 엄마의 표정. "엄마 얘 공부 잘해."라는 친구의 두둔에 미묘해지는 그 표정이 징그러웠다.


학교에서는 과목별 성적을 내고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를 매겼다. 그것을 벽에 붙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의 인권 따윈 없던 시절이다. 그러니까 공부는 나에게 동아줄이었다.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악착 같이 매달려야 했다. 그것이 내 살 길이었다.


집 앞 5분 거리 고등학교를 놔두고 20분 버스를 타야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집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마음이 놓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13단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죄 없이 감옥살이를 했다가 풀려난 것처럼 숨통이 트였다. 다시는 발길조차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후 주홍글씨는 내 삶에서 지워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쓰는 비밀번호에는 13이란 숫자가 들어간다. 이미 떠난 동네라 아무도 모를 테니 가장 비밀스러운 번호였다. 도전을 시작할 때 일부러 13이란 숫자를 쓰기도 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내리라는 마음에 새긴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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