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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아빠 차 뭐야?"

by 홀로서기ing

"너네 아빠 차 뭐야?"


중학교 짝꿍이었던 반장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아빠의 이름이나 나이, 직업 정도는 누가 물으면 바로 대답할 수 있게 준비했지만, 차종을 물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없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반장은 대수롭지 않게 뒤에 앉은 아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서는 "우리 아빠 차 바꿨다!"라며 신나서 떠들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교과서를 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거짓말이 들통날까 두려웠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또다시 손가락질당할까 봐 움츠러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길가에 늘어선 차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아빠가 있는 집은 다들 차가 있는 모양이지? 그때 내가 기껏 읽을 수 있는 차종이라고는 아반떼, 소나타 정도였다. 다음에 누가 물어보면 아반떼라고 대답할까, 소나타라고 대답할까? 차량 색깔은 뭘로 해야 하지? 번호판도 외우고 다녀야 하나? 따위의 양치기 소녀처럼 머리를 굴렸다.


19세가 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 가족 이야기를 하면 장단을 맞췄다. 친구가 웃으면 나도 웃고, 친구가 울면 나도 슬픈 척했다. 오롯이 기뻤던 순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슬펐던 순간은 오래 남았다. 내가 진짜 슬퍼서 눈물이 날 때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숨죽여 울었다. 엄마도 언니들도 들을 수 없는 곳이어야 했다. 우리는 저마다 상처투성이라 제 몫을 살기도 버거워 서로에게 차마 기대지 못했다. 울고 난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평범해 보이기 위해 애썼다.


매 학년마다 친구를 사귀었다.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 아무라도 붙잡은 뒤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혀가면서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학년이 바뀌고 다른 반이 되면 매몰차게 관계를 끊었다. 상대는 갑작스럽게 돌변한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늘 '우리가 친구였나?'라는 냉소를 머금었다. 친구를 사귀면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다. 거짓으로 쌓은 모래성 같은 우정은 파도 한 번이면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나는 친구들과 다른 세계에 사는 아이였다. 겉으로는 적당히 밝은 척, 얌전한 척, 평범한 아이였다. '평범'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사는 평범한 아이로 보이고 싶었다. 도드라짐 없이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졸업하면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존재이고 싶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성인이 된 후에도 반복됐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그만두면 연락을 끊었다. 전업주부가 되어 동네 엄마들과 교류를 하다가도 아이들이 흩어지면 멀어졌다. 적당히가 잘 되지 않았다. 적당히 친해지고 어울리면 되는데, 그게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 많이 따지고 재다가 멀어지거나 절박하게 매달리다 관계를 망쳤다. 적당히 평범하게 살고 싶은 바람은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게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다. 웃고 있지만 웃지 않고, 울지 않지만 슬퍼 보이는. 어떤 때는 나조차 기쁜지 슬픈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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