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육아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돈을 벌지 못하니까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고 면접을 보고 직장에 들어가듯, 열심히 하면 뜻대로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육아는 무엇을 성취하는 시간이 아니라 참고 버티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체험도 다니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 뒤켠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과시욕도 있었다. 오랜 시간 육아에 지친 엄마들과 비교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한 결심들이 도미노처럼 한 번에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육아를 하면 할수록 나를 잃어 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나에게 쓰는 돈은 아까웠다. 신생아를 키울 때 입었던 수유복을 아이가 다 큰 뒤에도 해질 때까지 입고 다녔다. 미용실도 가지 않고 빗질도 하지 않아 수세미처럼 뭉쳐진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다녔다.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가족이 먹고 남은 국과 반찬으로 후루룩 끼니를 때울 뿐이다.
아이들의 장난감, 옷, 책, 가방 등 물건이 가득 차면서 제일 먼저 내 자리를 비웠다. 내 책을 빼고 아이들 책을 꽂고, 내 책상을 버리고 아이들 책상을 놓았다.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잠도 편하게 자지 못했다. 침대 두 개를 붙인 뒤 양쪽에 아이들을 두고 중간에 끼인 채 잠을 잤다. 아이들이 잠꼬대를 하면 토닥여주고, 뒤척이면서 이불을 걷어내면 다시 덮어주면서 보초를 서듯 잠을 잤다. 집안 어디에도 나를 위한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공간을 잃어버리면 나를 잃게 된다는 걸 몰랐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 유일하게 곁을 내어주었다.어둠에 기대 쉬었다.
어둠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고 해가 뜨는 것이 달갑지 않아, 밤이 깊어질수록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졌다. 늦게 잠이 들면 게으른 아침을 맞이했고 몽롱한 상태로 낮을 흘려보내고 다시 밤을 만날 수 있었다. 빨리 해가 지고 밤이 오기를 바랐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내 몸에 독처럼 번지면서 서서히병들어가고있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
밤이 되면 좋은 엄마로서 역할을 끝내고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은 나는 얼굴 없는 사람이었다. 생기를 잃은 눈빛과 어두운 낯빛, 무뎌진 감정이 뒤엉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거울조차 보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몰골을 차마 볼 자신이 없었다. 밤이 되면 또다시 어둠에 잠식되어 갔다. 어둠은 달콤한 독주가 되어 이성을 취하게 했고 적나라한 분노를 부추겼다.
아이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밤까지 빼앗길 수 없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아이들을혼내고 다그쳐 눈물을 쏟게 한 다음 억지로 잠들게 했다.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혼나면서도 화가 난 엄마를 달래기 위해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해가 뜬 다음 날이면 내가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구나,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도 하울처럼 심장을 잃어버린 것일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면서 심장을 잃고 짐승이 되어 가는 하울에게서 나를 보았다. 어둠이 지배하는 폐허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 가면서 짐승으로 변하는 모습. 그런 하울을 살린 건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 소피였다. 그녀의 조건 없는 사랑이 그를 인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괴물이 되어 가는 나를 살린 건 아이들이었다. 나조차 하찮게 여긴 나를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보물처럼 아껴주었다.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아 거칠어진 얼굴과 손을 어루만져주고, 귓가에 사랑한다고 연거푸 말해준 덕분에 멈춘 심장이 다시 뛰었다. 아이들이잃어버린 나를찾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