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만 보고 싶다.
2025년이 두 달 남짓 남아있다. 버거운 한 해였다.
4월부터 직장에서 임금이 체불되었고
모든 일상은 경제적 궁핍에 지배당했다.
가족구성원의 지병이 발견되었고
에스컬레이터에서 의식을 잃은 모친은
다리를 크게 다쳐 오랫동안 입원 중이다.
낡은 차는 사고로 폐차를 면치 못했고
다시 낡은 차 한 대를 구매하고 나니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을 지불하겠다는 대표의 약속을 믿으며(약속을 믿은 건지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고 싶었던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세번째 계절을 맞이하니 통장 잔고도 바닥이 나고 마음의 여유도 바닥이 났다. 대표는 때때로 계약직 직원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회유의 수단으로 삼거나, 정리해고를 통해 구성원들의 위기 의식을 조성하곤 했다. 퇴사를 하고 난 후에도 임금을 받지 못한 동료들이 많아 회사 내의 소식이라도 듣기 위해서는 회사에 남아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와서는 잘 모르겠는 것도 사실.
특별한 불행도 아니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웃기도 하니까
부당함을 직접 경험하는 일은
삶에 대한 감각을 더 날카롭게 해주니까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웃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돈이 나오지 않으니 글 쓰는 일 말고는 재주가 없는 나는 공모전과 지원 사업을 매일 찾아보고 재단 공고를 들여다본다. 동기들의 북토크 소식과 수상 소식이 피드에 계속 나타나면, 돈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나는 쉽사리 침울해지곤 한다. 그들의 순수성이 몹시 부러워지고 마는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없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그랬듯 결핍은 또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이끌고 와 끝없이 나를 움직이도록 만든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내 재능은 애매하다. 나는 말보다 글로 소통하는 게 편한 사람일 뿐이지 아주 뛰어난 작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실감하는 중.
예전처럼 우울에 잠기지는 않지만, 때때로 왕성한 무기력(이라는 말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이 찾아온다. 이를테면 청소나 설거지, 아이의 등교, 업무 등을 모두 끝마친 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간의 공백 속에서 우두커니 서있을 때. 다음에 무엇을 할까 떠올려야 할 때. 분노에 가까운 무기력이 밀려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지난 일을 더듬어보아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다만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게 느껴질 뿐이다.
비라도 좀 그쳤으면 좋겠다.
쨍쨍한 해를 올려다보며 광합성이라도 좀 하게.
비가 좀 그쳤으면 좋겠다.
눈부신 세계를 보며 나도 눈부시다 잠시 착각이라도 좀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