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무너진다는 것

가정폭력에 대하여

by 오늘


남편과 나는 모두 가정폭력이 빈번한 집에서 자랐다.

가정 폭력은 당연히 아동학대를 수반한다.

내 경우는 정서적, 정신적 학대를 당하며 자랐고,

남편은 행과 차별, 정서적 착취를 겪으며 자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모를 용서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가족과 결별할 때마다 박수를 쳐 주었다.

잘했다 장하다 기특하다,라고.


물론 그 결별은 조각이 난 넝마를 기우듯 어느새 은근슬쩍 기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과 달리 서로가 있었기에 완전한 결별은 아니라도 분리는 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에 내몰릴 때조차 (가령, 가족의 죽음이라던가, 장례식이라던가.) 서로의 부모 때문에 싸우게 될 때조차 그들을 용서하라는 말만은 하지 않았다.


서로의 집안을 두고 콩가루라고 낄낄거리며 농담을 하면서도, 부모인 그들의 생이 불행했고 여전히 불쌍하다고 인정면서도, 결코 용서 하라고 한 적 없다.


그런 말은 직업의식이 없는 정신과 의사 및 상담사나

흔한 자기 계발서를 찾아보면 쉽게 만날 수 있으니 가족을 용서하고 싶은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길.


용서하지 않겠다. 그래서 내가 더 괴롭다고 해도.

이제 와서 이 미움이 내게 의미가 없고

흐르는 세월에 미운 감정마저 옅어졌다고 해도

그래도 용서하지 않겠다. 그게 내 결심이다.


나는 종종 망가진 우주선에서 자란 우리들이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못했다.

가정이라는 건 세계를 키워내는 일처럼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매일 고군분투다.


리의 모든 고난이 우리의 불행한 가정사 때문이라 치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아니었다.

불행은 꽤 평등했다. 내가 살아온 짧은 삶 안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삶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다.

겉보기에 온전한 가정에서 자란 이들도, 유복한 이들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괴로움을 안고 산다.

애초에 온전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폐화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만 이 가정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것 아니.


괜찮다. 망가진 우주라도.

괜찮을 거다. 그 속에서 키워진 외계인이라도.

계속 수리하고 덧대가면서

우리가 이 우주선을 지킬 테니까.


서로의 아픔에 대해 용서를 강요하지 않았던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치유해주고 있었으니까.

불타오르는 사랑은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세계의 가장자리에 있던 나를 유일하게 알아봐 준 사람이라는 유대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니까.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영원한 적이자 동지가 되어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때때로 당신이 밉다. 그리고 오늘도 당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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