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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l 23. 2021

밉지 않은 백조오리

안데르센 동화 공모 「미운 오리 새끼」 각색 동화




 자신을 백조라고 생각하는 오리가 있었습니다. 하얗고 통통한 몸집에 짧은 다리가 아주 귀여운 오리였습니다. 특이하게도 하얀 날개 한쪽 끝에는 푸른 지도 같은 깃털이 나있었는데, 오리는 그 깃털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것은 딱 질색이었거든요.


 “얘, 넌 백조가 아니라 오리야. 왜 자꾸 너를 백조라고 생각하니?”


 그럼 백조오리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백조라고 생각하는데, 나를 오리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니? 그냥 나는 백조라고 불리는 게 좋아.”


 오리 친구들은 그럴 때마다 한숨을 푹 쉬면서 헛된 꿈을 꾸고 있는 백조오리를 한심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백조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날개 끝을 만족스럽게 치켜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떼의 백조 무리가 큰 날개를 펼치고 바람소리를 내며 호수에 날아들었습니다. 백조들은 휘어진 활처럼 긴 목 노란 부리 끝에 검은 물감을 콕 찍은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물 위에 사뿐 내려앉았습니다. 헤엄을 치고 있던 오리들은 모두 입을 벌리고 백조의 활강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윤기 나는 털은 마치 자개처럼 빛나고 목의 곡선은 미끄러질 듯이 아름다웠습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새로운 조류의 등장에 지나가던 숲 속 동물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무런 관심도 없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것은 백조오리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다들 왜 이리 요란이람.’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요. 백조들은 호수를 점령하고서는 휫파람 같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린 백조라고 해. 다들 알고 있지? 헤엄을 쳐야 하니까 모두들 비켜줄래?”


 짧은 다리를 물속에서 파닥거리며 옹기종기 모여있던 오리 떼들은 화들짝 놀라 물풀이 무성한 호수 귀퉁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진짜 예쁘다. 저게 백조구나. 난 백조 처음 봐.”
 “나도 나도. 어쩜 저렇게 우아하게 헤엄을 칠 수 있지?”
 “난 왜 오리로 태어났을까? 나도 백조가 되고 싶어.”


 오리들은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구석에 웅크렸습니다. 호수는 넓지 않아 오리들이 움직이려고 하면 물갈퀴 얽혀 계속 자맥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참 헤엄을 치던 백조 한 마리가 멈칫하고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자신의 목덜미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부딪쳤기 때문이죠.


 “뭐야, 이건?”
 “백존데?”


 백조오리는 동그란 눈으로 백조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잠시 당황한 얼굴로 백조오리를 바라보던 백조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너 아주 웃기는 오리구나? 푸하하하하!”


 백조 오리는 조금도 웃기지 않다는 얼굴로 침착하게 백조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멋쩍어진 백조는 음음!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아유 참, 내가 평소답지 않게 너무 크게 웃었네. 원래 내가 이렇게 경박하게 웃는 백조는 아닌데 말이야.”


 지켜보던 동물들은 백조의 큰 주둥이가 벌어져서 목젖까지 보이는 모습이 썩 우아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리들은 백조오리를 얼른 데려와야 한다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지만 백조 무리의 위세에 눌려 물갈퀴조차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백조가 백조오리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얘 넌 백조가 아니야. 너는.”


 백조는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오리야.”


 라고 말했습니다. 의기양양한 백조의 말에 동물들은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저렇게 주둥이 앞에 대고 뻔한 사실을 굳이 확인시켜주다니 정말 냉혹한 백조라고 생각하면서요. 잠시 침묵이 호수 위를 떠다녔습니다.


 “나는 백존데?”


 아까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표정으로 백조오리가 대답했습니다. 당황한 백조의 목소리가 다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너는 오리라니까? 백조는 우리처럼 생긴 게 백조고, 너는 다리도 짧고 목도 짧고 주둥이도 짧고, 아무튼 너랑 나랑 전혀 다르게 생겼잖아!”


 백조 오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백조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다르게 생기면 같은 이름을 쓰면 안 되는 거야?”
 “당연하지! 그걸 이제야 알았니?”


 백조는 날개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그럼 너는 왜 백조야?”
 “뭐?”


 백조오리의 황당한 질문에 백조는 대답할 말도 잊고 잠시 주둥이를 벌린 채 멈춰버렸습니다.


 “저기 있는 백조는 주둥이가 길고 끝부분만 검은데 너는 주둥이도 저 백조보다 짧고 검은 부분이 절반이잖아. 그리고 쟤랑 너랑은 다리 색깔도 다르고 물갈퀴 너비도 다른데? 또 저쪽에 있는 백조는 깃털 색깔도 좀 다르고, 쟤는 깃털에 갈색 점이 있고, 너희들 모두 다리 길이도 다 달라. 그런데 왜 백조야?”
 “아니 그건!”


 백조는 당황했습니다. 백조오리는 다시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백조라고 부르는데 왜 네가 맞다 아니다 하는 거야? 나는 날 백조라고 정했어. 그걸 네 마음대로 바꿀 순 없는 거야.”
 “그래도 너랑 나랑은 생긴 게 전혀 다르다니까!”
 “너도 다른 백조들이랑 달라. 그렇다고 네가 백조가 아닌 건 아니잖아.”
 “나는 조금 다른 거고, 너는 전혀 다르잖아!”
 “음, 그게 그렇게 문제가 돼?”
 “문제가 되지!”
 “무슨 문제?”


 백조오리는 푸른 날개를 호수에 담가 정돈하며 되물었습니다. 백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부리를 딱 부딪치며 대답했습니다.


 “위신에 문제가 생기지. 위신!”
 “그런 거야?”
 “그렇지.”
 “그것 말곤 없어?”


 백조는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백조오리는 물었습니다.


 “그럼 내가 너를 오리라고 부르면 오리의 위신이 떨어져?”
 “아니, 백조가 오리보다 월등히 뛰어난데 오리의 위신이 떨어질 리가 없지!”
 “백조는 오리보다 뛰어나지 않아.”
 “뭐라고?”


 백조는 이제 완전히 우아함을 잃고 씩씩거렸습니다. 반면 백조오리는 계속해서 말을 거는 백조가 귀찮아졌습니다.


 “어쨌든 나는 백조라고!”


결국 화가 난 백조 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백조오리는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래, 너를 뭐라고 부르든 네가 백조인 것처럼 나도 네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그냥 백조일 뿐이야. 위신과 아무 상관도 없고, 그냥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문제일 뿐이라고.”


 숲 속 동물들은 저도 모르게 백조오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백조의 흰 깃털은 빳빳이 솟아올라 백조가 얼마나 화났는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습니다. 백조오리는 덧붙였습니다.


 “나는 내 이름과 내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너는 내게 그 이름을 쓰라 말라 명령할 권리가 없어. 그리고 너희들 때문에 호수가 너무 좁잖아. 더 넓은 호수로 가는 게 어때?”


 구석에 모여 있던 오리들이 백조오리의 말에 주춤주춤 호수 중앙으로 헤엄쳐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그래, 원래 우리 호수잖아, 라는 속삭임이 오리들 사이에서 들려왔습니다.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오리네! 흥.”


 백조는 백조 무리로 돌아가 뭐라고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조오리는 피곤한 대화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물장구를 쳤습니다.
 오리들이 웅성거리며 중앙으로 나서자 백조들은 조금 전의 오리들처럼 귀퉁이로 몰렸습니다. 체구가 큰 백조들은 날개도 펼치지 못하는 호수에서 더는 헤엄치지 못하고 휙 날아올랐습니다. 오리들은 더 이상 날아가는 백조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백조가 진짜 백조이긴 한가 봐.”


 백조오리를 보면서 오리들이 말했습니다. 맞아 맞아, 여기저기에서 수긍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백조오리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호수에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유난히 하늘이 맑다고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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