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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07. 2021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H.O.T

팬질의 역사 <1>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말했다.


"야, 저거 니 얘기다."


 심지어 주인공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조차 나를 연상케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내 나이 14세, 나의 첫사랑, 나의 첫 우상. 윤윤제 같은 멋진 남사친은 없었지만, 그랬다. 나의 10대는 H.O.T.로 점철되어 있었다.


 대구 옆에 붙은 작은 지방 도시 경산에서 H.O.T.에게 덕통 사고를 당해버린 나는 일단 친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 오빠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왜 우리가 오빠들을 쫓아다녀야만 하는지. 다음 날 해야 할 숙제도 미뤄둔 채 녹화해 둔 비디오테이프들을 틀어가며 친구들을 설득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시대의 여중생 대부분 누군가의 팬이었고, 그중 90%는 H.O.T.의 팬이었으니까. 열정의 차이가 있었을 뿐.

   나와 친했던 3명의 친구들은 편이 갈렸다. H.O.T. 팬 2명과 젝스키스 팬 1명. 같은 반 친구들 중에는 신화 팬들도 있었고 중 3쯤 되자 GOD팬들도 급격히 늘어났다.  죽인 채 지내는 수의 타 가수 팬도 있었다. 서로 다른 오빠들을 섬기고 있었지만 우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오빠들이 원하는 것 평화와 화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We are the world.


 우린 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나와 내 친구들을 뜻함. H.O.T. 팬 전체를 뜻하지 않음) 누군가의 안티가 되는 것보단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것이 훨씬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늘상 들러붙는 안티들, 다른 팬덤의 시기와 질투. 숙적 같이 구는 이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팬들만큼 끈질겼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이라는 말을 조타수로 삼 꿋꿋이 평화의 길나아가기로 정했다. 오빠들이 '평화의 시대'라는 영화까지 찍지 않았던가. 상영관을 찾기 힘들어 난생처음 보는 낡은 영화관에 찾아가 팝콘을 씹으며 연속 3번을 관람한 후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평화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열렬히 사랑하 것이 옳았다.


 랑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다. 에게 오빠들은 연애의 대상이 아니었다. 좀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상과의 교 같은 존재였다. IMF, 집안의 몰락, 친구의 죽음과,  수술을 해야 했던 사고 등 여러 불행한 사건들 안에서 세상을 불신하던 소녀가 끝내 인류애를 잃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희망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시절을 울며 웃으며 버텨낼 수 있었다.

 

  H.O.T의 팬이라는 사실 때문에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조롱을 당하는 일은 흔했다. 빠순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광기 어린 스토커 취급을 받는 것은 별로 대단치도 않았다. 집안의 개인사적 불행 내 사랑을 막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은 꿈을 품어야 했다. 그 어떤 꿈이라도 품지 않으면 한 발도 내딛기가 어려웠다. 좁디좁은 지방 반도시에 왜 그리 불운을 넘쳐나던지. 그 시절 친구들의 가족사는 평범한 구석이 없었다. 이혼과 외도, 폭력과 가난, 우리 집도 별 다를 것 없었다. 별 다를 것 없는 불운들이 우리의 유년기를 빼앗아갔다. 오빠들은 그 시절 우리의 솜사탕 같은 꿈이었다. 먼지투성이 폐허에서 두 손에 꼭 움켜쥔 달콤한 솜사탕.


 사랑이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세상도 내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심하기로는 어디에서 빠지지 않던 나도 사랑 앞에서는 열렬했다. H.O.T가 지방에 오는 일은 일 년에 두어 번이었는데, 기차역도 없는 도시에서 중학생 여자애가 몇 시간 버스를 타고 H.O.T를 러 가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

   구에 두타라는 대형 쇼핑몰이 생겨 H.O.T가 축하공연을 온 적이 있다.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옆돌기를 하며 봐도 내성적이기 짝이 없던 나는 감히 겁도 없이 혼자 대기표를 받으러 나섰다. 미리 공지된 장소에는  눈에도 짬이 보통이 아닌 언니들이 돗자리와 텐트까지 펼친 채 진을 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도 모두 흰 우비를 입고 있었다. 압도적인 숫자에 심장이 쪼그라들었지만 표를 받으려 땡볕에 홀로 몇 시간을 기다렸다. 다리면 내게도 기회가 오려니.......

  내 동공 지진을 발견했던 걸까, 몇 시간을 우두커니 혼자 으니 오빠들과 똑같은 머리 색깔을 한 언니분이 와서 내게 물었다.


  "혹시 클럽 H.O.T?"

  "아, 아."


 클럽 H.O.T는 H.O.T의 공식 팬클럽 이름이었다. 나는 팬클럽 가입 시기가 지나 가입을 하지 못상태였다. 주황머리의 그녀는 무심하게, 하지만 약간은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여기는 클럽 H.O.T만 미리 표를 받을 수 있어요. 팬클럽 아니면 당일날 선착순으로 기다렸다 들어가야 하고."


 혼자 몇 시간을 땡볕에서 기다렸던 나는 그 말을 듣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등 뒤에 클럽 H.O.T.라고 적힌 하얀 우비가 어찌나 부럽던지.

 한껏 멋을 내느라 'NII'에서 새로 산 분홍색 봄 니트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Maru'에서 옷을 샀으면 좀 더 운이 좋았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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