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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10. 2021

클럽 H.O.T.가 되고 싶었어요.

팬질의 역사 <2>


 세기말 시대에 클럽 H.O.T.에 가입하는 길은 14 소녀에게  난제였다. 금은 기획사마다 방침이 다르겠지만, 당시에는 활동 중에만 공식적으로 팬클럽 모집을 했다. 싱글 앨범 개념이 없던 시대이므로 정규 1집이 나오면 1기 모집, 정규 2집이 나오면 2기 모집을 했다. 지역마다 팬클럽 회장과 임원이 있어서 파워가히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atte is horse...




   일단 컴퓨터가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이므로 팬클럽 모집 소식을 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잡지나 사서함 등 그야말로 아날로그 한 방식으로 공지가 전해졌으므로 멀리 서울에서 전해져 오는 파발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을 촉각을 세우며 기다렸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각종 페이로 결제하고 로그인하면 그 가수의 공식적인 팬임을 증명받을 수 있는 21세기와는 달리, 우리는 두 발로 걸어 은행에 . 때 ATM기가 있었던가? 아마 서울에는 있었을 것이다.  직원을 통해 무통장입금을 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입금은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서만 가능했는지 다가도 모를 일이다. 


 경산에는 조흥은행이 없어 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갔다. 팬클럽 되기가 뭐가 그렇게 힘든지. 엔터 측에서 제시하는 일정 금액을 입금하면 입금확인증이 발급되는데, 팬클럽 카드를 받을 때까지  종이 한 장은 팬클럽 카드를 대신해 클럽 H.O.T. 의 신분을 증명했다. 클럽 카드 역시 직접 배송이 아니라 공지한 날짜에 우리가 찾아가서 받는 시스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세기말이었으니 뭐, 웬만한 건 다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입금확인증을 내면 본인 확인 후 팬클럽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엄마를 졸라 팬클럽 가입비용을 받아 입금했다. 사람 두 명은 들어갈 듯한 힙합 바지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마나 벅찼던지. 나에게도 학생이 아닌 신분과 소속이 생 것이다. 입금확인증만 봐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 앉은키만큼이나  전축에서 울려 퍼지던 오빠들의 노래.  감격에 겨워 눈물이 다 다.


 며칠 후, 오빠들이 대구에 온다는 소식에 학교가 술렁거렸다. 이번에는 당일 선착순 입장으로, 클럽 H.O.T.가 먼저 입장한 후에 일반인들이 입장하는 방식이었다. 아직 클럽 H.O.T.가 인쇄된 하얀 우비가 배송되지 았다는 사실만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이름도 찬란한 공식 팬클럽 회원이 아니던가. 친구들 중에서 공식 팬클럽에 가입한 것은 나뿐이었다. 돈이 들어가는 시점에서 친구들은 주춤했다. 상관없었다. 돈 낸 팬만 팬인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나는 특별히 좀 진심이었다. 엄마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나를 배신한 건 엄마다. 엄마는 감사하게도  왜 그렇게 부지런하고 또 성실한 주부였던 걸까. 그 시절 청바지는 한 달은 입어야 빠는 것이 국룰이었거늘. 엄마는 몇 번 입지 않고 걸어둔 내 힙합바지를, 팬클럽 입금확인증이 든 청바지를 기어이 세탁기로 던져 넣고 만 것이다. 통돌이 세탁기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 청바지를 끄집어냈을 때, 희뿌옇게 바지에 들러붙은 수많은 종이 조각에 H.O.T.의 흔적은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세탁기 앞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새끼손톱의 반절 크기도 안 되는 종이들을 모아다가 붙여보려고 애를 썼다. 모자이크를 하려 해도 이것보다는 큰 종이조각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입금확인증을 잃어버리면 팬클럽 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무통장입금이었으므로 받은 쪽에서 증명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은 100% 수동화 시스템이었으므로 요직을 맡고 있는 누군가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대체로 뭐든, 안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당일날 나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절친 세 명과 함께. 선뜻 따라와 준 젝스키스의 팬이었던 친구에게 늦은 감사인사를 전한다.  의리 있는 녀석이었구나.


 일단 팬클럽 회장을 찾아야 했다. 누가 봐도 대군을 이끄는 장수 같은 기운을 띠고 있는 임원 언니에게 냅다 달려갔다. 나는 짧은 내 인생 전부를 담은 진실한 표정으로 간곡히 사정을 아뢰었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팬클럽 입금확인증을 모친께서 세탁기에 돌려버리셨다고. 누구나 한 번쯤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느냐고, 이것은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이며 나는 하늘에 대고 진실만을 말하고 있음을 클럽 H.O.T.의 이름으로 선언한다고. 테이프로 간신히 이어 붙인 모자이크 조각을 깃 바라보던 임원 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정은 안 됐지만 입금확인증이 없으면 클럽 H.O.T. 줄에는 설 수 없습니다."


    , 그 순간 무너지던 나의 억장이여. 나의 희망이여.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음을 터트리자 임원 언니는 나의 등을 토닥거리며 잠시 안타까워해주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붉은 봉이 되고 싶었다. 그럼 오빠들 공연을 앞자리에서 볼 수 있겠지? 친구들은 애석한 얼굴로 내 곁을 지켰다. 뭔 일인가 싶어 주변에 있던 팬들이 흘깃거리며 지나갔다.

    일반인 줄이라도 서야 한다며 나를 일으킨 것은 그나마 공연에 관심이 없었던 젝스키스의 팬이었다. 윈도우 바탕화면 같은 푸르른 잔디언덕에 끝도 보이지 않는 줄의 행렬 펼쳐져 있었다. 나는 넋을 놓은 채 일반인 줄에 앉았다.  

함께 있는 것이 좋아 널 사랑한 거야.
날 바라보는 너의 눈빛이 따사로와.


 팬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울면서도 나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공연 시작되려면 대여섯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오빠들의 노래를 열창하며 공연을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입장을 시작했다. 클럽 H.O.T. 쪽의 줄이 우르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애통하고 애석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온 도시를 가득 메운  팬들의 떼창 소리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지금 나는 오빠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비우고 무소유의 미덕을 떠올리자.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난의 길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때 일반인 줄에 섰던 사람 중 누구라도 들어가긴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공연시간이 임박하자 오빠들이 왔다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고, 노래가 흘러나왔으며, 입장하지 못한 우리는 줄 선 자리에 그대로 서서 오빠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립싱크였을 그 노래를.


  그래도 수많은 팬질의 역사 중에 그날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또렷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내 사랑은 확실히 아가페적이었다.



오래된 기억이므로 조작과 오류가 난무할 수 있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클럽 H.O.T. 의 제보가 있다면 해당 부분 빛의 속도로 정정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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