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페 파라노몬

by 기분울쩍

아테네 민주주의 시대에 그라페 파라노몬(Graphe Paranomon)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누군가 제안해서 시행된 법이 공동체에 해악을 끼쳤을 때 그 법안 제안자를 시민 누구나 사후에 고발해서 법을 폐지하고 심할 경우 제안자를 처벌하는 제도다.


법안 제안자가 그라페 파라노몬에 의해 불법입법시도로 고발되면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아테네법정에서 판결한다. 유죄면 즉시 해당 법은 폐기되고 법안 발의자는 벌금 또는 공민권 박탈이나 심할 경우 추방까지 당할 수 있었다.


직접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법안을 발의하고 직접 의회에서 투표하기 때문에 민의가 직접 그리고 즉각 반영되는 장점도 존재하지만, 선동가나 궤변가들에 의해 포퓰리즘적이고 감정적인 위험한 법안들이 통과될 가능성이 상존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체납자나 악성채무자를 감옥에 가두는 기존 법을 완화해서 감옥에 가는 대신 벌금을 분할납부하도록 하는 새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국세관리 어려움과 일부 부유층과 권력층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그라페 파라노몬에 의해 기소되어 재판에서 이 법은 무효화되고 제안자는 벌금형에 처해졌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긴밀한 유대가 있는 특정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에 대해 동일사항 반복 고발금지, 특정고발을 기각하도록 규정한 면책조항, 그를 해치려 하는 자는 어디서든 즉각 체포해 구금 가능 등이 포함된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안이 시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사적복수나 다를 바 없다는 이유로 그라페 파라노몬에 의해 기소되고 폐지되었다.


이 제도는 누구나 제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적견제나 현대의 필리버스터처럼 발목 잡기 용도로 활용된 사례도 많지만, 선동가를 방지하고 권력자나 기득권들의 무분별한 입법을 막는 장치로 일정 역할을 수행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 제도가 현대의 위헌법룰심판제도 등과 다른 점은 위헌적 법률뿐만 아니라 악의적 발의자까지 처벌한다는 점이다.


좀만 잘 다듬으면 현재에도 적용가능하지 않겠는가?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기존 제도를 폐지하고 새롭게 추진한 제도들을 일정 시일이 지나면 시민들의 의지로 제소하고 독립기관에서 재평가해서 해당 제도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보고 아니라면 다시 기존 제도로 회귀하고 제도를 제안하고 법률을 통과시킨 자들은 이름이라도 공개해서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는.. 이런 형식으로 운영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제일 먼저 제소하고 싶은 제도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원천 봉쇄한 로스쿨과 특목고 제도이다. 로스쿨 도입으로 과연 합격자 중 SKY 비율은 얼마나 줄었고 소득 하위 50% 이하 계층의 합격률과 강남 3구 거주자의 합격률은 사법고시 대비 얼마나 변했는가 등을 시민의 재판대에 올리고 싶다. 특목고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부가 후대의 능력으로 세습되어 개천 용은 사라지고 바다 용들만 계승되는 죽어가는 사회가 돼버리고 있다.


이 외에도 교묘하게 기득권들에게 유리한 제도로 사회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제도가 백만 가지는 되지 않겠는가?


빛의 혁명으로 이제 머든지 할 수 있는 권력을 주지 않았는가..


1 당원 1 표제 이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 많은 권력을 당신들만 누리지 말고 보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이런 제도도 고민 좀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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